6·25 한국전쟁시기 양양군민이 겪은 이야기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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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81회 작성일 2018-03-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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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이 발발한지 67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싶은 해를 보내면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 드나 양양지역에 살고 있는 일부 어르신과 재향군인을 한정적 조사대상으로 설정(設定)하고 6.25전쟁 때 겪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양양문화원부설 향토사연구소 연구원들이 지난 2015년과 2017년 2년차에 걸쳐 현지답사를 통해 80여 명의 구술자료 수집을 마쳤다.


양양은 지정학적으로 변방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달리 한이 서린 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전거(典據)로는 고려 때 강릉도 존무사(江陵道 存撫使)이였던 안축(安軸)선생은 양양은 전란(戰亂)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가 없어서 덕과 재주를 지닌 인물이 나지 않았다고 그의 문집인 근재집(謹齋集)의 양양신학기(襄陽新學記)에 밝혀진 바 있다.


이와 같이 역사시대 이래로 변란이 있를 때 마다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原動力)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양양인의 강인한 정신력이 뇌리에 면면히 이어온 까닭이라고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삼국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5세기 중반 이후 신라와 고구려의 변방으로써 격전장이 되었으며,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고종 때는 몽골군이 침략하였을 때 양주의 부병과 부민이 결사 항쟁하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양주성은 함락되었고, 부병과 부민은 몰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군민들이 입은 상처는 이루 해아 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픔이 체 가기기도 전에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는 자유 민주 진영의 최전선인 남한과 공산 체제의 최전선인 북한으로 나누어 졌다. 이 대 양양군도 이남과 이북으로 나뉘면서 7개 읍 면 중 현남면은 완전히 38도선 이남이었고 현북면이나 서면도 일부는 이남에 속해 있었다.


금번 면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은 6.25전쟁에 대한 체험담의 중심은 현재의 80대 이다. 그 이유는 지금의 70대는 당시에 10세 전후로 부모를 따라 다니기에 급급했었고, 90대 이상은 많은 체험은 하였으나 고령으로 이미 사망하였거나 생존하고 계시는 분들 대부분이 노쇠현상으로 구술제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조사대상자의 면담내용의 비중이 한(恨) 많은 피란살이 보다는 대부분 전쟁수행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게 된 여유도 80대는 당시의 13세부터 20세를 전후한 나이 군(群)에 속해 있었음으로 피아(彼我)를 막론하고 전쟁 물자를 나르기 위해 강제로 끌려가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소위 지게꾼으로 활동하였거나, 당시 현역병으로 입대하였기 때문에 전쟁 체험담 일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글의 중시은 향토사의 기록을 사실대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그럼에도 제보자 중에는 두려움과 중압감 때문에 일부는 사실을 비껴 갈 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다.


또한 자료 내용도 독자를 위한 흥미위주 보다는 당시에 처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 한 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 적었기 때문에 면담자에 따라서는 어감(語感) 차이로 표현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6.25전쟁의 고난을 극복하면서 이 나라를 지켰는지를 후손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이므로 문장구성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 그리고 면별로 면담자의 인원이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은 특정지역에 치우친 것이 아니며 당시 거주지를 감안하여 면담한바 현 거주별로 목록을  작성한 결과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향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늦기 전에 추가로 자료를 수집하여 제3집을 발간하는 것도 향토사 발굴과 보전에 하나의 방편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끝으로 본 자료집이 출간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김진하 군수님과 이기용 의장님 그리고 면담에 진솔하게 응해주신 각 마을의 주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


2017.12

이규환

양양문화원부설향토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