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0호

- 6월 : 이해조 부사(李海朝府使)가 현산삼십경(峴山三十景)을 노래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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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17회 작성일 2019-01-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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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조(李海朝) 그는누구인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동(子東), 호는 명암(鳴巖). 숙종 7년(168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1694년 빙고별검(氷庫別檢)으로 지내다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후, 1703년 3월 응교(應敎)·수원부사·전라도 관찰사·대제학(大提學) 등을 두루 거쳤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고 특히 시문에 능(能)하여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선생으로부터 천재라는 격찬(激讚)을 받았다.
조선 숙종 35년(1709) 2월에 양양부사로 부임한 명암 이해조(鳴巖李海朝)는 율곡 이이(栗谷李珥)선생이래 대학자로 영시암(永矢庵)에 은둔하고 있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선생과 같이 양양의 경치 좋은 삼십경(三十景)을 두루 찾아 보고나서 느낌을 서로 주고받으며 오언율시(五言律詩)로 노래한 현산삼십영(峴山三十詠) 일명 양양별곡(襄陽別曲)을 명암집(鳴巖集)에 남겨 오늘에 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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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남대천(襄陽南大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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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혈사(靈穴寺)



양양의수려한경관을노래한소회(所懷)는?


이해조 부사는 현산삼심영 서문(序文)에서 양양의 수려한 경관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사람들을 만나도 산수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며 삼연 김창흡 선생과 화답(和答)한 시문을 기록으로 남겨 널리 알리고자 함이다.
“산과 물이 견줄 수 없이 진귀(珍貴)하게 서로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내같은 재주로 전부를 충분히 꿰뚫어 알리기는 능력이 모자라나 비록 언덕과 골·물·돌 하나하나를 듣고 본 바가 있으나 오히려 어렵도다. 하물며 강과 산이 넓고 크며 큰 바다와 명산이 상치(相値)하여 매우 아름답게 갖추어져 있다. (중략) 옛 고을의 기록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틈을 내어 망루와 사찰에서 적적하고 고요함 속에서도 시문을 지어 읊으며 다만 한때 한지역의 경치만을 기록해서 일찍이 없던 것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밝히니 내 어찌 기쁜 일이 아니랴. 이에 상고(上告)하여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싣는 바이다. 또 읍을 찾아 늙은이 가운데 현산삼십경의 시문을 짓고서 각기 짧은 글을 붙이고자 간략한 좋은 글을 요구하니, 삼연 김자익(三淵金子益)이 응하여 화답하였노라.”(중략) “내가 돌아보니 글이 없어 사람을 만나나 산수를 설명할 수 없었는데 내가 산수를 찾아 대하였으니 곧 다행이로다. 잠시 읊기도 하고 글로 화답도 하다가 병풍에 모두 게재하였으니 장차는 이것에 의하여 밝혀 펴질 것이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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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조대(河趙臺)



현산삼십경은어떤곳이며시사점(示唆點)은?


설악산(雪嶽山)·남대천(南大川)·낙산사(洛山寺)·천후산(天吼山)·의상대(義湘臺)·관음굴(觀音窟)·계조암(繼祖庵)·비선대(飛仙臺)·권금성(權金城)·하조대(河趙臺)·현산(峴山)·의춘암(宜春巖)·무산(巫山)·녹문(鹿門)·자지산(紫芝山)·쌍호(雙湖)·태평루(太平樓)·동해신묘(東海神廟)·죽도(竹島)·청초호(靑草湖)·상운정(祥雲亭)·대제(大堤)·봉정암(鳳頂庵)·사림사(沙林寺)·오색령(五色嶺)·북진(北津)·냉천(冷泉)·검달동(黔達洞)·납호당(納灝堂)·영혈사(靈穴寺) 등 30곳이며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지금의 인제군 봉정암(鳳頂庵)과 오색령[五色嶺,한계령]은 삼십경 시제(詩題)로 보아 당시는 양양땅이었다.
● 둘째 북진[北津,전진2리]리 어민들은 어로작업(漁撈作業) 시 월척미만 (越尺未滿) 물고기는 어족자원보호을 위해 방생했다.
● 셋째 사림사(沙林寺)는 부(府) 서쪽에 있는 옛 절터라 했는데, 요즘 사학자들은 선림원지(禪林院址)라 격을 낮춰 부른다.
현산삼십영(峴山三十詠)은 이해조의 대표적 한시로 양양 향토사료(鄕土史料)로 가치가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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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남 죽도선구(竹島仙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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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련암 관음굴(觀音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