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0호

- 12월 : 낙산사에 얽힌 조신 스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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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43회 작성일 2019-01-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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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 관음(觀音), 정취(正趣), 조신(調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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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 표지



『삼국유사』에전하는「조신의꿈」이야기.


이 설화는 낙산사 관세음보살의 영험을 강조하고 불교의 무상관(無常觀)을 구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설화를 삼국유사에 수록한 일연 스님이 감동했듯이 훗날 많은 문학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고, 춘원 이광수도 영향을 받아『꿈』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또 영화와 만화로도 재창작되었다. 일연 스님은 14세에 강현면 둔전리 진전사(陳田寺)에 들어와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수계(授戒)를 받은 스님이다.
조신스님짝사랑에빠지다.
조신은 신라의 스님으로 신라 세규사(世逵寺)가 가지고 있는 농장 관리인으로 파견되어 왔다.
그런데 조신스님은 고을 원님 김흔공의 딸을 홀로 연모하여 낙산사 원통보전에 여러 번 나아가 그 원님 딸과 인연이 맺어 질 수 있도록 관음보살에게 남몰래 날마다 기도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말았다. 조신은 관음보살상 앞에서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어 꿈속에 빠져들었다.
조신스님, 꿈속에서소원이루다 그런데 꿈에 김씨 낭자가 다가서며 '저도 속으로 스님을 사랑했지만 부모님의 명령을 못 이겨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하고는 이제 스님과 부부의 연을 맺고자 다시 왔습니다.'
조신은 관세음보살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한 것을 매우 기뻐하며 원님의 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 조신은 소원이 꿈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조신 부부는 자녀 다섯을 낳았다.



조신 생활고에 빠지다.


그러나 식구가 늘어났지만 농사 기술도 없어 점점 가난하여 생계를 꾸리기조차 어려웠다. 10여 년을 사방으로 돌
아다녀서 옷은 찢어지고 열다섯 살 큰아이는 굶어죽기까지 하여 익령[翼嶺:양양 옛이름] 해현[蟹峴:기고개-기정리와 사래의 사이고개]에 묻고 네 아이들을 데리고 우곡현(강릉 옥계)의 길가에 띳집을 짓고 살았다.
늙고 병들었으며 또한 굶주 려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열살 난 딸이 밥을 얻으러 남의집 문턱에서 개에 물려 울면서 와서 부부 앞에 눕자 부모도 함께 흐느껴 울었다. 부인이 눈물을 훔치면서 갑자기 말했다.
내가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다웠고 나이도 젊었습니다. 그리고 의복도 고운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라도 맛좋은 음식이 있으면 당신과 나누어 먹었고 옷감이 생겨도 당신과 함께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이렇게 살아 온지 15년, 정은 더할 수 없이 쌓였고 사랑은 얽히고설켜 정말 두터운 연분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근년 이래로 늙고 병들고 날로 더욱 깊어가고 굶주림과 추위는 날로 더욱 핍박하게 되었습니다. 한 칸의 곁방, 한 병의 간장의 구걸도 사람들은 용납해 주지 않았고 수많은 집 문전에서의 수치는 무겁기 산더미 같습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지쳐있어도 그것 하나 면하게 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느 겨를에 가정의 행복을 누리겠습니까?
젊은 얼굴에 예쁜 웃음은 풀잎 위의 이슬 같고 굳고도 향기롭던 그 기약도 한갖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 같구려! 당신에게는 내가 있어서 짐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곰곰히 지난날의 환락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번뇌로 오르는 계단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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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의꿈



가족이 나누어 살기로 하다.


우리가 모여 있다가 함께 굶어죽기 보다는 차라리 식구들을 나누어서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순경(順境)일 때는 붙들고 역경(逆境)일 때는 버리는 것이 차마 하지 못할 짓이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가고 머무는 것은 사람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오? 헤어지고 만남에는 운명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여기서 서로 헤어지도록 합시다.
조신은 아내의 제의를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아이들을 각각 둘씩 나누어 갈라서려 할 때 아내가 다시 말했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세요.”
서로 잡았던 손을 막 놓고 돌아서서 길을 나서려 할 때 조신은 꿈에서 깨어났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자신은 관음보살상 앞에 엎드려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쇠잔한 등불은 어스름한 불 그림자를 너울거리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조신 꿈깨어 정토사를 세우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수염과 머리털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조신은 망연히 넋이 나간 듯 인간세상에의 뜻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미 인간의 그 고된 세상에 대해 염증을 느껴짐이 마치 실제 백년의 신고(辛苦)에 시달린 것 같았다. 탐욕의 마음은 얼음이 녹듯이 없어져 버렸다. 이에 관음보살의 모습을 대하기가 부끄러워 참회를 금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해현으로 가서 꿈에 아이를 묻었던 곳을 파보니 그곳에서 돌미륵이 나왔다. 깨끗이 씻어서 낙산사에 봉안하고 경주로 돌아가 장원 관리 임무를 벗었다. 그리고 사재를 들여서 정토사를 세우고 부지런히 선업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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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 꿈이 이루어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