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역사와 문화

양양군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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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35회 작성일 2019-01-2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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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은 강원도 영동중부에 위치하며, 기원은 20만~70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손양면 도화리 일원에서 전기 구석기에 속하는‘아슐리앙’계통의 주먹도끼와 1천여 점의 뗀석기가 출토되면서 양양지역은 구석기시대이른 시기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손양면 오산리에서도 8000년 전의 신석기유적이 발굴 되었다. 그 외 군내 여러 곳에서 청동기, 초기철기문화유적이 발견되어 신석기시대 이후 사람들은 주로 식량자원이 풍부한 큰 강가 또는 하천, 호수 주변의 대지나 해안가의 모래언덕에서 움집을 짓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기원전 127년 이전에는 성읍국가형태인 예국(濊國)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구려시대는 익현현(翼峴縣) 또는 이문현(伊文縣)으로,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757)에 익령(翼嶺)이라 고쳐서 수성군(守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 9년(1018)에 5도 양계제 실시에 따라 현령이 파견되고 동계(東界)에 속했다. 이때 동산현(洞山縣)을 속현으로 병합했다. 고종 8년(1221)에 양주(襄州)로 승격했으나 1253년에 양주현, 고종44년(1257)에 읍호를 덕령(德寧)으로 격하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원종(元宗) 원년(元年,1260)에 양주(襄州)로 복귀되어 지양주사(知襄州事)를 두고 별호양산(別號襄山)이라 하였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부(府)로 승격되었고, 태종 13년(1413) 군현제(郡縣制)로 개편 때 양주도호부(襄州都護府)로 바뀌었다. 태종 16년(1416)에 양양도호부(襄陽都護府)로 개칭(改稱)되면서 지금까지 양양(襄陽)이라 부른다. 1618∼1791까지 3차례나 현(縣)으로 강등(降等)되었다가 부(府)로 회복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 강릉부 양양군, 1896년에 강원도 양양군이 되었다. 1914년 12개 면 중, 서면·현북면·현남면은 그대로, 군내면·부남면·위산면이 양양면으로, 동면·남면이 손양면으로, 강선면·사현면이 강현면으로, 도문면·소천면이 도천면으로 통합되어 7개면으로 재편되었다. 1915년 12월 25일 인제군 내면 광원리의 일부를 양양군 서면 조개리(명개리)에 편입, 1919년 토성면·죽왕면이 양양군으로 편입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국토가 분단됨으로써 38°선 이남인 현남면과 현북면 서면 남쪽 일부가 강릉군(江陵郡)에 속하였고 이북인 양양면 손양면 강현면과 서면 현북면의 대부분이 공산치하에 들어갔다. 1951년에 군 전역이 수복되고, 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 (收復地區臨時措置法)에 따라 현남면이 명주군(溟州郡)에 편입되고 현북면과 서면 일부는 다시 본군에 환속되었다. 1963년 속초읍(束草邑)이 시(市)로 승격 분리되고 죽왕면(竹旺面) 토성면(土城面)이 고성군(高城郡)에 편입되는 반면 명주군(溟州郡) 현남면(縣南面)이 본군(本郡)에 환원되었다. 1973년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으로 편입, 1979년에 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행정구역은 1읍 5면 124리 436반으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