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1) 현북면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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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19-11-0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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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옥,이응렬 등의 상광정리 감리교회와,오익환, 김재한, 박원병, 오정현 같은 한학자, 포수 김종대 등의 젊은 청년과 현북면 각 마을의 구장들이 만세운동의 계획을
추진하면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김재한은 김익열, 문종석, 김창환, 권광식, 김종성, 한윤성, 이희원, 오정현, 김우근 등이 현북면사무소 앞에 모여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쳐 부르게 하였고, 김종대는 수기로 만든 태극기 34개와 대형 태극기1개를 마을 주민에 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많은 군중이 신작로까지 가득 메운 가운데 황선주, 윤명종은“대한독립 만세”를 선창했다.


각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한 사람씩 동원되어 장날인 양양면에 갈 계획으로 현북면사무소 앞에 모였다.이에어 떤 집에서는 두 사람 이상이 참가하고,가까운 마을에 서
는 모여드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하여 어른,아이들도 모였다.일본 측 기록은 600여명의 군중이 모였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그 보다 훨씬 많았다.


이렇게 군중을 모으기까지는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이국범과 김재한의 역할이 컸다. 이국범이 4일 도리 김재한의 집에와서 경성 지방은 조선독립운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어 양양군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자기 혼자 양양군 전체를 알리기 어려우니 자신에게 손양면, 현북면이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주선하라고 하였다. 이에 김재한은 면민 다수를 권유하고 말곡리 구장 김창환 집에 가서 권유하였다.
또 김재한은 상광정리 김종대 집을 방문하여 “이 번 운동에 최선의 노력을 해 달라.”하면서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양양읍내에서 크게 독립만세를 불러 양양경찰서에체포된 동지를 구하자고 했다. 그리고 김종대 집에 서 이희원에 게“ 이번 양양군 각 면 모두 대한독립운동을 위해 양양읍에 모여 조선독립운동을 하였는데 오직 우리 현북면에서만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면 다른 면으로부터 후일 면목이 없겠지. 내가 다른 마을에 는 이미 권유를 마쳤는데, 모두 이에 찬동하여 9일에는 양양장터에서 현북면민이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만세를 외칠 것이니 자네도 참가하라.”는 권유를 하여 이희원도 도리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이에 찬동하였다.
또한6일 권광식도 김재한이 나와서 모이라고 말하였는데,김재한이 말하기를 “본군 내의 다른 면민은 대한국독립운동을 하므로 현북면도 이 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여서 명지리 구장 권광식은 “다른 면민이 실행한다고 하면 본 면민도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명지리는 자신이 맡겠다.”고 말하고, 8일 마을 주민을 모아 협의하여 각 집에서 1명씩 나오기로 결정하고9일 마을 주민40여 명이 모여 참가하였다.


대치리(大峙里)마을 주민은 구장 김종성과 황선주가 선도하였다.황선주가 8일 밤 와서 “내일 9일 현북면 내 다른 마을 사람은 전부 현북면사무소로 집합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로 하였는데, 이 마을의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묻기에, “ 다른마을 사람이 집합한다면 대치리 마을 주민도 간다.”고 대답하고, 한윤성 외 여러 주민을 불러 협의한 후 대한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9일이 되어서20명이 나왔기에이들을 이끌고 갔다.후일 증언에의하 면 자신은 구장으로서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 반드시 대한제국이 독립한다는 소문을 들어 이러한 일을 했다고 하였다.


구장 김익열은 김종대에게 현재 여러 곳에 서 성대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는 중이니 우리들도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권유하였다. 그리고 윤명종은 마을 주민 몇명에게 권유도 하면서 전체 마을 주민이 모여 함께 현북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이렇게 구장들이 마을 주민을 선도하여 면사무소에 모였다.
일부는 우리나라가 독립이 된 줄 알고 참가한 이도 있었다. 마을마다 구장들이 선두에 섰고, 현북면에서 신망이 있는 임병익,김재한 등과 감리교인 오세옥 등이 앞장
선 이 모임은 마치 면민대회와 같은 분위기였다.


당시 상황을 강원도장관의 전화보고문은 다음과 같다.


“4월9일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 주재소(四月九日襄陽郡縣北面其士門駐在所)를 습(襲)한폭민(暴民)은면장(面長)을협박(脅迫)하기를 심(甚)히 하여 면장(面長)은 부득이 일시 사무(不得己一時事務)를 중지(中止)하고 피난중(避難中)이다.”15)


위의 보고문 중 기사문주재소는 면사무소를 잘못 보고하였으며, 현북면사무소는 중요 서류를 이미 감추어 버렸고,면장과 면직원은 모두 도망하였다.군중은 면사무소
주변에 모여서 기세 높게 만세를 부른 후 면장을 앞세우고 양양면으로 가려고 먼저 면장을 찾았다.
그러나 면장은 하광정리 구장이었던 김진혁의 집에3일간 숨어 있었다. 김진혁은 만세운동의 지도자이며 자신이 태극기도 만들고 군중도 동원하였다. 그러나 면장과 개인적인 친분 관계로 자기 집에 숨겼고, 면사무소의 서류도 자기 집에 보관하여 놓고 비밀을 지켰던 반면, 기사문주재소 앞에가서 만세를 선창하는 이중적 행동을 하여 그 뒤, 모든 마을의 구장들이 징역을 살았는데 김진혁은 징역을 면하였다.
현북면의 군중이 면사무소의 주변에 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고 양양면으로 가려고 할 때 양양군 남부에서 신망이 높던 김익제(金翼濟)가 양양면에가 려던 군중을 저지 시켰다. 그는 손양면 동호리의 사람으로 그가 하광정리에온 이유는 양양면에 수비대가 주둔하여 그곳으로 간다면 인명 피해가 많을 것을 예상하여 이를 만류하러 왔다고 하였다. 만세군중은 한창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는 주먹밥을 싸가지고 와서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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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국사편찬위원회,한국독립운동사Ⅱ,7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