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6) 4월8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19-11-04 16:48

본문


오늘은 다섯째 날 양양 3‧ 1만세 운동이 있었다.


현북면은 독자적으로4월 8일 말곡리 구장 김창환이 노약자를 제외한 마을 주민 대다수를 인솔하여 현북면사무소와 기사문리 주재소에 몰려가서 대한독립만세운동을 벌
리다가 불상사 없이 저녁때 마을로 돌아와,내일(9일) 만세운동 준비를 위하여 각자가 소지할 수기를 다시 만들었다.


도천면은 논산리에서 만세운동이 있었다. 4월4일부터 계속 만세운동이 일어나니 논산리에서도 만세운동에 대한 명분론이 일어났다. 원래 이 마을에 는 중심인물 김주혁
(金周赫)이 당시 강원도청 주사로 있었기 때문에그,의 지시는 없었지만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온 군민이 만세운동에 참가하는 형편이 되었으니,당시의 구장 김주철(金周哲: 김주혁의 종형), 고광화(高光華), 황명찬(黃明燦), 박명원(朴明元), 고을주(高乙柱)등이 주동하였고 마을 앞에서 술장사를 하던 손계원이 힘을 모아 집집마다 한 사람씩 동원하여 면사무소와 주재소가 있던 대포리를 목적지로 하여 큰길로 갔다.
큰길은 부월리를 거쳐 대포리로 이어졌는데 부월리에이르 렀을 때 그곳에 는 이미 도천면사무소 회계서기 김우규(金宇圭)가 와서 대기하면서 만류하여 대포리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그곳에서 만세를 부르고 모두 해산하였다.


이날 독립만세운동으로 인하여 김주철, 고광화, 황명찬, 박명원, 고을주 등은 검거되어 양양경찰서에서 고초를 겪은 후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김주철을 제외한 4명이 90대의 태형을 받았다. 태형을 맞은 4명은 상처가 심하여 거적으로 만든 들것에 엎드려 이틀 동안 집으로 와서 일 년 동안 엉덩이 상처에서 구더기를 파내며 치료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