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② 도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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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04회 작성일 2019-11-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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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문리 이재훈과 이종국은 집에서 대형 태극기 제작하여 주민들의 앞장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인근의 대포주재소까지 행진하였다.
중도문리 김영경,부월리 이종순, 대포리 박사집의 활약으로 많은 군중이 대포주재소 앞에 모였다.
이렇게 도천면 군중은 약속된 대포주재소에 집결하여“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을 때, 강현면 만세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박봉래의 선창으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왔다.또 이철우도 물치장터에서 대형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독립선언식을 할때 보다 늘어난 만세운동 군중은 소형 태극기를 손에들 고 대포주재소로 행진하여 도천면민과 합세하였다.
대포 마을 앞 동해의 흰 파도 물결도 군마가 대열을 지어 달려오고 만세군중이 행군하여 오는 것 같았다.


전날  (4일) 양양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일경의 사전 대비책도 그들 나름대로는 철저하였다. 일경의 가족과 일본인은 모두 대포 항구의 배에 태워 바다에 피신시켰다.


물치장터에 모인 군중은 오전에는5백여 명 정도 였는데,오후에는 도천면민과 함께 대포주재소에 합세하였을 때는 점점 증가하여 만세군중은 1000여 명이 훨씬 넘었다.
이에도천 면 만세운동 군중은 강현면 군중과 함께 대포리 일경주재소 앞에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본은 물러가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니, 정말 일본인들이 쫓겨 가면 독립이 되는 줄 알고 기세가 높아지게 되었다. 겁을 먹은 수석이 직접 나와 군중에게 허리를 굽혀 빌었다.
일경이 물러가겠다는 설명을 듣고,날이 저물도록 천여 명의 만세군중은 내일(6일)양양에가서 독립만세운동을 할 것을 약속하고 해산하였다.
강현면과 도천면의 무력이 없는 평화적인 만세운동으로 일경의 굴복과 사죄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쳤다.


이 상황을 알리는 강원도장관의 보고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19년4월6일 오전7시 50분


“오일(五日) 양양군(襄陽郡) 양양면(襄陽面)에서 양반(兩班)을 중심(中心)으로 한 군중(群衆)삼백명(三百名), 태극기를 세우고 만세(萬歲)를 고창(高唱), 읍내(邑內)를 통과(通過)하려함으로진무(鎭撫)해산(解散)시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