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4) 서면의 만세운동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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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57회 작성일 2019-11-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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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은 조직을 확대해 북평리, 용천리, 상평리 등에서도 연락책을 뽑고 군중을 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서면은 양양면에서5km 정도 거리에서 면사무소가 있고, 서면주재소는 면사무소에서 15km 떨어진 오색리에있었다 .


서면은 양양면과 이웃하여 임천리의 계획과 연계되어 추진하였다. 임천리 이교완의 집을 본부로 한 만세운동 계획은 이웃한 서면으로 확산되어 북평리 노용수(盧龍秀)를 중심으로 용천리의 구장 노병우(盧炳禹崔)와明최명옥( 玉:별명崔鶴吉)이계획에 참가하였다. 상평리도 임천리에이 웃한 곳이어서 임천리와 직접 연결되었다. 임천리 본부에서 4월3일 태극기를 전달 받거나 가져다 상평리 박춘실(朴春實)의 집에 서 수기를 만들고 또 행군대열의 기수가 들고 갈 대형 태극기도 만들었다. 또한 주민이 독립 만세 운동에대 거 참가하도록 권유와 설득을 하였다. 특히 상평리에서의 만세운동은 박춘실의 활동이 컸는데, 그는 원래 인제 사람으로 한말(韓末)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일제강점기 상평리에 피신하여 술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서면은 양양읍내에서 양양면 및 손양면과 합세하여 만세운동을 같이 했다.


<표4>서면조직


책임자

노용수, 박춘실


마을 책임자
용천리 노병우, 최명옥
상평리 박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