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3) 양양면의 만세운동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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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13회 작성일 2019-11-0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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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면은 유림사회와 현산학교와 양양보통학교 출신의 청장년층을 중심으로 계획하였고, 감리교회 신도들이 철저히 준비하여 계획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양양면 각 마을의 책임자는 다음과 같다.
감곡리는 이관진(李寬鎭), 이원도(李源燾),이원희(李源喜)의삼부자, 거마리는 김명기(金明基), 김종태(金鍾台), 임천리는 최인식(崔寅植), 최항식(崔亢植), 안광수(安光洙) 등 많은 인원이 참여하였다. 조산리는 최영덕(崔永德), 최영직(崔永直)형제, 청곡리 김계호(金啓鎬),서문리 김주열(金周烈), 김규용(金圭容) 부자, 남문리는 김재구(金在龜), 김주호(金周鎬), 김필선(金弼善), 김봉운(金鳳運), 사천리는 이정희(李貞熙)가 각자 자기 마을을 맡고,태극기를 수기로 만들기로 하였다.


임천리에서는 이교정, 이건충의 집에서 이현철(李鉉喆), 김형진(金衡鎭) 등이 참여하여 4월1일부터 옥양목과 백지로 태극기를1,100여 개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김두선(金斗善)이 중심이 되어 김필선, 김주호, 김계호, 김재구, 이원희, 이두형, 김규용 등이 4월1일 오후7시부터 성내리 뒷산 곳집(상여보관소)에 모여 밤을 새워가며
3일간5천여 장의 태극기를 만들었다. 후일 며느리 김정애 여사의 증언에의하면 여기서 조화벽도 86장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독립선언서는 면사무소 급사인 김필선이 김주호, 김계호 등과 면사무소 창고에 촛불을 켜놓고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4월 2일 밤새도록 등사한 뒤 새벽에 김필선이 밀봉하여 임천리 본부에전 달하였다.


김명기는 4월3일 양양읍내와 서면(西面) 등지에만세 운동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양양군에 서 서로 이웃하고 있는3개면 즉 양양면‧서면‧손양
면은 양양장터에서 만세운동을 같이 하는 것으로 임천리 본부를 중심으로 계획하였다.
또 감곡리 이상온(李相瑥)은 자기 집에 서태극기를 만들었으며, 청곡리, 기정리, 강현면의 금풍리, 사교리, 방축리, 물갑리, 둔전리, 간곡리 등을 다니며 군중을 동원하였고 4월3일 김규용, 최인식, 김필선, 김재구는 옥양목과 백지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4월 4일 양양 장날에 대규모의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위하여 양양면, 서면, 손양면 가평리 등에서 태극기를 만들며 준비가 한창이었다.


한편, 본부 임천리의 이교완과 이건충 집에서 등사기로 태극기를 대량 인쇄하여 다른 마을로 보내어 수기를 만들게 하였다.


여기서 옥양목은 행렬의 선두에서 기수가 들고 갈 대형 태극기를 만들고, 백지는 손에 들고 흔들 수 있는 태극기 문양을 등사기로 인쇄 또는 그려서 수기를 만들었다.
양양면 조직 결성은 다음과 같다.


<표3>양양면 조직


책임자

최인식, 김주호, 김명기, 이관진


마을 책임자
감곡리 이관진, 이원도, 이원희
거마리 김명기, 김종태
임천리 최인식, 최항식, 안광수
조산리 최영덕, 최영직
청곡리 김계호
서문리 김주열, 김규용
남문리 김필선,김재구,김주호,김봉운
성내리 김두선
사천리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