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2. 양양 31만세 운동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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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66회 작성일 2019-11-0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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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의 만세운동은 이석범 선생이 양양군 전체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진행하였다. 강현면과 도천면의 만세운동 계획과 실행은 동생 이국범(李國範)과 아들 이재훈[李載勳:異名能烈]에게 맡겨 놓고, 이석범 선생은 양양군 전체의 독립 만세 운동의 준비를 위해 양양면 임천리로 갔다.
이석범 선생의 고향인 임천리 이교완의 집을 본부로 하여 양양의 유림과 청장년들을 참여시키고자 양양보통학교1회 졸업생 최인식(崔寅植)을 계획에 참여시켰다.
최인식은 직업이 목수로서 군 관내의 대소규모의 토목사업은 거의 도맡아 시공함으로써 서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의 신분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 4월 4일 독립 만세 운동의 동지들을 규합하는데 앞장섰다. 최인식의 처남인 거마리 김명기의 활약이 컸으며 유림이 접근하기 힘든 청장년 사회와 농민사회에 만세운동의 동참을 권유하는 한편, 양양보통학교 졸업생들을 참가시켰다.


같은 시기에양 양감리교회에서는 3월 하순 조화벽이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태극기가 당시 교회 청년지도자이며 양양보통학교 8회 졸업생인 김필선과 김계호, 김주호 등에 게 전달되어 조화벽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계획이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양양보통학교 출신인 최인식과 김필선 등이 선후배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유림 세력과 감리교 세력은 양양보통학교 출신들에의해 서 연결되어 민족의 독립을 열망하는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되어 연합 세력을 형성하고 함께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