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1. 지리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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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83회 작성일 2019-11-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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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양양군은 7개면으로 개편되었는데 상업의 중심지는 양양장터와 강현면 물치장터였다. 동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국도가 준공되었으나 아직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여 강릉과 고성군과의 교류는 미약하였다.
영서지방과의 교류는 오색령이나 구룡령 산길을 도보로 넘어 다녔다. 이에양양장 터는 영서지방의 물화(物貨)를교류하는 곳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당시 이곳의 문호는 대포항 이었다. 바닷길을 이용하여 원산으로, 이어 경원선 철도를 이용하여 경성(일제강점기 서울의 이름)으로 갔다. 또한 뱃길이 러시아의 연해주까지도 연결되어 있어 대포가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부 근의 물치장터가 상업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이 같은 대포항의 특성은 조화벽이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어온 장소로써 지리적 특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