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1호

2월 - 양양의 3·1만세운동(조화벽 지사와 양양 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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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47회 작성일 2020-02-0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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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 양양의 3·1만세운동(조화벽 지사와 양양 감리교회)




2019년 己亥年은 기미 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양양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말에 독립선언서의 유입이 단초가 되었다.
유입 경로는 두 갈래로 하나는 이석범 선생이었고, 또 하나는 양양 감리교회 조화벽 지사였다.
지난달에는 이석범 선생과 임천리에 관한 내용이었고, 이달에는 개성 호스돈여학교 비밀 결사대원으로 개성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조화벽 지사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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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벽 지사>



조화벽과 양양 감리교회


조화벽(趙和璧:1895.10.17.~1975.9.3.)은 양양 감리교회 전도사였던 조영순(趙英淳)의 무남독녀로 양양면 남문리에서 태어났다.
양양 감리교회는 1901년 10월 5일 하디(R.A.Hardie) 선교사에 의해 강원도에서는 최초로 설립한 교회로, 항일운동에 앞장선 5대 김영학 목사, 8대 송정근 목사 그리고 조화벽 지사 등 걸출
한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성지이다.
김영학 목사는 당시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들에게 대한독립에 대하여 일장연설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했고, 송정근 목사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사직을 박탈당하고 투옥되었으며, 6·25전쟁 때 납치된 후 학살되었다.
또한 조화벽 지사는 16세 되던 1910년에 유학을 떠나 원산 성경학교를 거쳐 루씨여학교(樓氏女學校)에서 수학한 후, 1919년에 개성 호수돈여학교 재학 중에 기미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학생 비밀결사대원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현재 28대 교역자로 31년째 시무하고 있는 담임 김한구(金漢九) 목사는“양양 감리교회야말로 하디 선교사의 영적 정신을 이어받은 민족구국제단”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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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감리교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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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김한구 목사(출처-기독교타임즈)>




양양3·1만세운동을주도하다


조화벽은 1919년 3월 5일 만세운동으로 개성 호수돈여학교의 휴교령으로 삼엄한 수색과 경계를 피하여, 독립선언서를 버선목에 몰래 감추어 원산을 거쳐 당시 양양 대포항으로 귀향하였다.
조화벽의 맏며느리인 김정애(金貞愛,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장)여사의 증언에 의하면“대포항에 도착하자 일본 경찰이 소지품을압수하고 검문을 하였는데, 버선목에 감춘 독립선언서가 발각될까봐 굉장히 마음 졸였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감리교인이며 면사무소 급사였던 김필선(金弼善)에게 전달하고, 이석범 선생을 중심으로 한 지역 유림과 양양 보통학교 동문 그리고 농민들을 규합하여 4월 4일 양양장날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조화벽 지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김필선은 김주호, 김재구 등 동료들과 면사무소의 등사기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했고, 한편 임천리에서는 이교완, 이교정 집에서 수십 명이 모여 태극기를 만들던 중 장날을 하루 앞둔 4월 3일 일부가 발각되어, 이석범 선생을 비롯한 마을 주민 20여 명이 체포되고 제작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374매가 압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최인식(崔寅植)을 비롯한 많은 주동자들이 거마리 김종태(金鐘台) 집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성내리 뒷산에 있는 곳집(喪具保管所)과 거마리 김종옥 집 뒷산 곳집에서 밤새 태극기를 제작하였고, 각 마을마다 책임자가 있었기 때문에 4일 장날 만세운동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때 조화벽 지사도 86매를 만들었다고 하니 당시의 사정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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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호수돈여학교(출처-심옥주 소장)>



유관순의오빠유우석과결혼후항일독립정신을계승하다


조화벽은 1925년에 유우석((柳禹錫·유관순의 오빠)과 결혼하였고, 다시 귀향한 1932년에는 가난으로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한 농촌의 학생을 위하여 양양 감리교회에 정명학원을 개원하여 13년 동안 배출한 600여 명의 졸업생들에게 항일독립정신을 계승시켰다.
그 후 유우석의 고모인 유정숙(柳貞淑)은 양양면 사천리에서 여생을 보냈고 가족들은 양양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으며, 일부 친인척들은 지금도 양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에 조화벽 지사는 1982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으며, 춘천의 윤희순, 철원의 곽진근과 함께 강원도의 3대 여성독립운동가로 꼽히고 있으며, 충절의 고장 양양의 근대 선각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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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학원1,2,7회 졸업생(출처-국립여성사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