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1호

12월 - 양양지방의 바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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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26회 작성일 2020-02-0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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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양양지방의 바람 이야기


양양의 봄은 봄바람으로 시작한다. 양지쪽에 눈이 녹고 봄바람이 불면 새싹이 돋아난다. 그러다 강풍으로 돌변하면 많은 시설물을 파괴하고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특히 산불이 발생하면 강풍으로 인해 불덩이가 날
아다니며 이산 저산에 불을 옮겨 걷잡을 수 없이 엄청난 피해를 준다.


1. 양양의 풍신(영등신)


양양지방에서는‘바람님’이라 하여 풍신(風神)을 모시는 음력 2월 1일을‘영등날’,‘영동날’, ‘바람님날’이라 부른다. 영등신은 할머니로서 2월 1일 내려왔다가 2월 15일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며 영등신을 따르는 수부신은 20일에 올라간다고 말한다. 이날은 새벽에 주부는 우물에 가서 정화수(井華水)를 길어 장독대에 놓고 소반위에는 오곡밥과 탕, 어물 등을 차려놓고 하늘에서 내려온 풍신 할머니에게 1년간 풍화(風禍)가 없도록 빌고 2월 15일은 풍신 할머니가 승천하므로 이날도 1일과 같이 차려놓고 빈다. 2월 초순에 비가 오면‘물영등’이라 하여 풍년이 들고 강풍이 불면‘바람영동’이 내려와 흉년이 든다고 했다. 영등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며느리와 함께 오면 비가 오고, 딸을 데리고 오면 바람영등이라 한다. 그 이유는 비가 오면 며느리 옷이 젖어 밉게 보이게 함이고, 바람이 불면 다홍치마가 바람에 날려 예쁘게 보이기 때문으로 고부 갈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날 어촌에서는 출어를 하지 않고 영등신을 바람님, 풍신, 바람할머니라 부르며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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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산>



2. 양간지풍 통고지설


서기 1751년 택리지에서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통고지설 양간지풍 일구지난설(通高之雪襄杆之風一口之難說’) 즉‘고성과 통천지역은 눈이 많이 오고 양양과 간성지역은 바람이 강한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양양과 강릉지방에서는 통속적으로 양강지풍통고지설(襄江之風通高之雪)이라 불러왔다.
양간지풍의 특성은‘강한 바람’과‘고온건조’다. 양간지풍의 위력은 태풍을 능가한다. 봄철에 양양지방과 간성사이에서 부는 바람은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국지풍으로 고온건조하고 풍속이 빠른 특징을 보인다. '양간지풍'은 산불이나 대형 화재의 원인으로 주목받아왔다. 『조선왕조실록』과『승정원일기』등에도 성종 20년(1489)의 대화재와 낙산사 화재 이후 양양, 강릉, 삼척 등 일대에 산악지역과 민가를 모두 태우는 봄철 대형 화재가 자주 발생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 가운데에 '산화폭발(山火爆發)', '산화치열(山火熾烈)', '화괴비무(火塊飛舞)'같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국지적 돌풍이 화재의 확산에 바람이 큰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임천리(林泉里) 철수혈(鐵叟穴)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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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혈>



어느 때엔가 양양부사가 부임해 보니 어찌나 바람이 심하고 강한지 농작물이 제대로 크지 못할뿐더러 설사 결실은 했다 하더라도 바람에다 떨어져 버려 농민은 1년 내 농사를 짓고도 굶어야 할 형편이었다. 새로 부임한 부사가 가만히 생각하니 이 고을 사람을 잘 살게 하자면 바람을 막을 수밖에 없으니 강풍의 진원지가 어딘지 알아보아야겠다고 정사에 앞서 바람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사또가 바람이 불어오는 서쪽 방향으로 거슬러 석성(石城)이 있는 녹문산(현재 임천리 석성산)의 정상에 올랐으나, 바람이 생겨나는 곳이 진원지가 어디인지 그 장소를 알 수 없다. 이리 저리 찾다보니 석성(石城)에는 10여 개의 혈(인근 동민은 철수혈이라 함)이있다. 귀를 기우리고 자세히 들어보니 이 혈(穴: 구멍)마다 안에서 바람이 나오는 소리가 나기에 부사는 바람의 진원처가 바로 여기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안 사또는 동민을 동원시켜 큰 바윗돌을 가져다가 10개의 혈을 다 막아버렸다.
그리고는“이제 양양에는 큰 바람이 불지 아니 할 것이며 농사도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돌아왔다. 사또가 돌아오는 동안에는 바람이 잠잠하더니 부중(府中)에 돌아와 동헌(東軒)에 올라서니 전에 일찍이 겪지 못했던 큰 바람이 또 불기 시작했다.
혈의 당처에 바윗돌로 막아 이제 바람이 안불 터인데 이상하다고 행각한 그는 사람을 시켜 그곳에 가보라고 했더니 갔다 온 사람이 말하기를“굴을 막았던 돌은 다 넘어지고 혈은 옛 모습대로 이었습니다.”하고 보고하기에 사또는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관원과 동민을 데리고 다시 그 굴에 가서 이번에는 혈을 막지 아니하고 제물(祭物)을 차려 혈마다 제사를 지냈다. 그 뒤로부터 바람이 잦다 한다. 이에 유래하여 양양에서는 큰바람이 불기만 하면 이곳 철수혈(鐵叟穴)에 와서 제를 올렸다고 하며 이 혈을 신혈(神穴)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역사적 고찰에 의한 양양산불은 봄 4월에 국지강풍이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양양은 항상 불조심을 생활화하지만 특별히 봄에 불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양양의 바람은 해돋이 바람, 산 향기 바람, 여름은 피서 힐-링 바람, 가을은 오색단풍바람, 겨울은 흰 달빛 바람 모두 생기(生氣) 생거(生居)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