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1호

10월 - 탁장사(卓壯士) 떡 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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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63회 작성일 2020-02-0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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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 탁장사(卓壯士) 떡 마을 이야기



1. 탁장사의 탄생


오색 굴아우 맞은편에는 장군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장수가 말을 타고 투구를 쓰고 달리는 형상을 하고있어 장군바위라 부르고있다. (현장군바위주유소뒷산) 송천리는 광산 탁씨의 집성촌인데 탁씨의 22대조가 사망하여 묘를 쓸 때 지관이 초청하여 묘지를 정하기를 부탁하니 그가 말하기를 이 자리는“장군바위를 바라보는 이곳에 산소를 쓰면 후손 중에 장사가 태어날 것이오.”라고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들은 탁씨 후손들은 은근히 장수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고대하였다.
그런데 조선 순조 때 탁씨의 24세 손인 탁세주와 전주이씨 부인 사이에 둘째로 태어난 아기가 기골이 장대하여 집안에서는 이아이가 장차 장수가 될 것이라고 기뻐하고 그 이름을 탁구삼(卓龜參)이라 지었다.
그 후 장수가 태어난다는 말을 들은 일제는 우려하여 투구모양의 바위를 떨어뜨려 아래로 굴려 버렸고 쇠말뚝을 박아 장수가 태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탁장사(卓壯士) 떡 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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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탁장사의 성장


龜參(구삼)은 낳을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성장하면서 감히 누가 힘겨루기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음식을 다른 아이보다 2~3배의 양을 먹었고 특히 떡을 좋아 하여 할머니(경주김씨)가 자주 떡을 해주면 엄청 많은 떡을 먹어치웠다. 겨울철에 마을 사람들이 떡 추렴을 하면 2~3되의 찰떡을 먹어치웠다. 그래서 떡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어느덧 성장하여 힘이 장사여서 어떤 일도 남보다 3~4배로 일을 했다.



3. 탁장사의 힘자랑


가) 통방아를 수렁에 쳐 박다.


탁장사가 양양에서 장을 보고 가던 중 어느 마을에 당도하니 마을청년들이 모여 큰나무를 베어 깎아 통방아(큰나무를 1/2를 속을 파내어 물이 차면 내려가서 방아가되는것)를 만들고 있었는데 마침 참을 먹으며 막걸리도 한 잔씩 마시고 있었다.
먼길을 가다가 탁장사도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고 싶었지만 마을사람들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본체도 안하고 자기들끼리만 먹었다. 이를 괘씸하게 생각한 탁장사는 주막에 들러 식사를 하고 마을사람들이 돌아간 밤에 그 장소에 가서 만들던 통방아(4~5명이 들어야 하는)를 들어 멀리 논수렁에 쳐박아 놓았다.
다음날 아침 다시 모인 마을 사람들은 방아를 찾아다니다 수렁에 박혀있는 통방아를 찾아내고 낮에 지나던 탁장사가 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탁장사의 힘을 알아본 그 마을사람들은 탁장사를 찾아와 음식을 대접하고 잘못을 사과하였다. 사과를 받은 탁장사는 수렁에 박혀 있던 통방아를 꺼내 제자리에 놓고는 유유히 갈길을 갔다.


나) 강릉 권장사와 힘겨루기


조선시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이태조가 창건한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타버린 후 국가 재정이 부족하여 270년간 그대로 내버려 둔채 있었던 경복궁 중건에 착수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목재를 모아들였다. 당시 개자니골(현북면 어성전 2리 서남쪽,일명 개잔리)과 가마소골(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사이 바다재에 아주 큰 황장목이 있었다. 이곳은 양양과 강릉의 접경으로 많은 주민들이 나라에 바칠 벌목 부역에 나와 일을 하게 되었다.
이때 공교롭게도 제일 큰 한 그루나무가 경계부근에 서있어 서로 차지하려는데서 내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무를 베면서 쓰러뜨릴 때 경계 북쪽으로 쓰러지면 양양이 차지하고 경계 남쪽으로 쓰러지면 강릉이 차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무가 경계 중간에 쓰러지므로 주인을 가릴 수 없게 되자 또다시 내기로 이나무를 지고 가는 편이 갖기로 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통나무를 여럿이 들어 지게에 올려놓고 강릉의 장사와 양양의 장사를 뽑아 내세웠다.
당시 강릉(현 퇴곡리)에 힘세기로 이름난 권장사가 뽑혔고 양양은 송천 탁장사가 나섰다. 먼저 강릉의 권장사가 지고 일어서 다가그대로주저앉고말자다음양양서면송천리에사는탁구삼의 차례가 되었다. 탁장사는 나무를 지고 일어나서 걸어 내려왔다.
주위의 숨을 죽이며 바라보던 양양사람들은 환호성을 쳤고 강릉사람들은 놀라 혀를 찼다. 마을에 돌아오자 소래(송천리) 사람들은 떡을 하여 큰잔치를 베풀었다.
그 후부터 卓龜參(탁구삼)씨는 卓壯士(탁장사)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탁장사 후계자를 뽑는 놀이로 큰잔치가베풀며풍년이들기를기원하였다.
매년 열리는 양양문화제 때도 큰나무토막을 지고 일어서서 멀리가는 탁장사 뽑기 민속경기가 열리고 있다.



4. 송천리 떡마을


이런 역사적인 인물을 기리기 위해 송천에서는 탁은기씨를 주축으로 온 마을이 떡 마을 추진을 위한 계획을 수립, 신청하여 송천 떡 마을로 지정 국비, 도비를 지원받아 2003년 떡집 건물을 신축하고 10여 가지의 민속 떡을 생산 판매하고 떡 체험 마을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