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2호

3월 -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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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75회 작성일 2021-02-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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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 현남면 인구리에 있으며 양양에서 남방 20km의 인구 해변에 주위 1km, 높이 53m의 우뚝한 봉이다. 옛날에는 섬이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육지와 연접되어 있으며 해변에서 바다 내음이 풍기고 기암괴석이 깎아서있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사시 울창하므로 죽도라 하였고, 이 섬의 장죽은 강인하여 화살용으로 적품(適品)이므로 조선시대 조정에 매년 장죽을 진상하였다 한다. 1927년 3월에 김덕삼이라는 여승이 창건한 암자인 죽도암(竹島庵)이 섬 북쪽에 있으며 또 방선암, 농구암, 연사대, 청허대 등이 있어 더욱 기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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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정>

 

특히 기괴한 것은 부애(浮崖)인데 죽도암 사이 깊숙한 곳에 깊이 3척, 직경3척 가량으로 원형이 되어 맑은 물이 사시 마르지 않고, 죽도봉 정상에는 어느 시대인지 미상이나 왕가의 태봉 유적이 있으니 해상 풍경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정상에 새소리 바람소리 쉬어가는 곳 죽도정이 있으니 1965년 5월 13일 현남면내 유지들이 주축이 되고 행정의 지원을 얻어 준공하였다.

예전에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풍경을 노래했으며 양양팔경 6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2017년에 죽도봉 정상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편의를 더하니 탐방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 전망대는 높이 19.5m이며 철재 나선형으로 3층 구조로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은 남쪽으로 가깝게 인구항이 한눈에 보이고 인구해변과 멀리 휴휴암까지 바라볼 수 있다.

서쪽으로 백두대간이 멀리 병풍처럼 둘러싸이고, 북쪽으로는 죽도 해변과 동산 항을 비롯하여 멀리 하조대까지 보인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본 죽도 해변의 서핑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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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핑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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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흔들바위>

 

방문객 안전을 위하여 전망대 최대 출입 인원을 40명으로 제한한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두 갈래인데 하나는 인구마을 성황당 입구에서 오르는 코스로 목조 데크로 총 280개 계단이며, 울창한 송림사이로 솔향기가 더 없이 좋다.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오르는 중간 좌측에 바위가 있는데 규모는 작으나 밀어보면 흔들리고 수년의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는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바위로 주민들은 이 바위를 흔들바위라고 부른다.

또 다른 코스는 죽도 동쪽 바닷가에서 오르는 길이다. 목조 데크로 237계단이여, 오르는 중간 중간 보이는 바다 풍경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물안개, 기암괴석, 철석 이는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등등...

죽도는 바닷가 1km 전 구간에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1시간 정도면 죽도 전체를 천천히 둘러 볼 수 있다.




●동산석구(洞山石臼) : 죽도 동편 연사대 아래에 있다. 둥근형으로 스스로 움직여 서로 마찰됨에 따라 중심이 방아확처럼 파였다 하여 석구라고 하는데 방아확은 방아 공이로 찧을 수 있게 돌절구 모양으로 우묵하게 판 돌구멍으로 방아공이가 떨어지는 곳에 묻고 그 속에 곡식을 넣고 찧거나 빻는다.

●주절암(駐節岩) : 시인 선비와 관광객들이 구경할만한 곳이라 하여 즉 죽장을 멈춘다는 뜻에서 온 것이다.

●방선암(訪仙岩) : 옛날 봉래선인들이 놀던 곳이 있어 신선들이 상봉한다는 뜻으로 방선암이라 하고 각자(刻字)한 것이 입구에 있다.

●청허대(淸虛臺) : 죽도봉 북쪽에 이르면 심신이 상쾌하여 세상물정을 잊고 선경에 청허한 심정이 자연 솟아 난다하여 청허대라고 한다.

●농구암(弄鷗岩) : 선인들이 세상사를 멀리하고 백구를 벗 삼아 한가한 세월을 보내던 곳이라 하며, 전망이 매우 좋아 누구나 한번 가면 떠나기 싫을 정도로 주위에 괴암기석이 있고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학바위 : 죽도의 동쪽 해안에 있는 바위인데 파도에 침식되어 그 모양이 학이 앉은 것과 같다하여 학 바위라 한다.

●연사대(鍊砂臺) : 옛날 적송자(赤松子)가 주사(走射)를 연마하던 곳이라 하며 대 아래에는 신선이 바둑 놓던 흔적이 있다. 적송자(赤松子)는 중국 전설시대 선인의 이름으로 신농(神農)때의 우사(雨師)로서 후에 곤륜산에 들어가 선인이 되었다 한다.

●학바위 : 죽도의 동쪽 해안에 있는 바위인데 파도에 침식되어 그 모양이 학이 앉은 것과 같다하여 학 바위라 한다.



<죽도 관련 옛 시 소개>

竹島仙臼(죽도선구) 죽도의 신설절구 李海朝(이해조)

深深蒼竹島(심심창죽도) : 푸르름이 깊고 깊은 죽도에서

英英玉杵臼(영영옥저구) : 옥절구 소리 맑아 듣기도 좋다.

磨轉何太速(마전하태속) : 얼마나 빨리 돌려서 갈았느냐

千劫彈指久(천겁탄지구) : 천겁의 기다림이 몹시 짧았네.

玄霜不再擣(현상불재도) : 평생 두 번 찧지 않으려

雲英能見否(운영능견부) : 운영은 나타나지 않았네.

我欲作窪樽(아욕작와준) : 내가 우묵한 술통을 만들어서

長盛葡萄酒(장성포도주) : 포도주나 오래도록 담아두련다.

※운영(雲英) : 옛날 명기(名妓)의 이름임.




(저자 소개)

이해조(李海朝1660~1711)

본관은 연안, 자는 자동(子東), 호는 명암(鳴巖), 1681년(숙종7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1694년 빙고별검(氷庫別檢), 1709년 2월 양양부사, 동년 9월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후, 1710년 응교(應敎).

수원부사, 전라도 관찰사, 대제학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났고 시문에 능하여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으로부터 천재라고 격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