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2호

1월 - 새로 발견한 교표각자(校標刻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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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01회 작성일 2021-02-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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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표의발견경위



양양문화원 부설향토사연구소 연구원들은 2016년 6월 30일 교계각자(校界刻字)가 발견되었던 현북면 장리(獐里) 달하치에서 남서쪽으로 약 20여 Km 떨어진 현북면 법수치리(法水峙里) 마을에서 금표에 대한 현지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법수치리 태생인 김기석씨가 김진목 전법수치리장과 함께 지난 가을 임산부산물인 버섯을 채취하기 위하여 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3시간 거리에 위치한 법수치리의 자연부락인‘갈밭구미’란 곳에서 암각 문자를 발견했다는 제보를 받고, 당시 보았다는 그 암각문 사진촬영을 부탁을 한 다음해인 2017년 10월 김진목으로 부터 ‘校標(교표)’라고 새겨져 있는 암각문 사진을 향토사연구소에서 인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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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표 위치도>

 


■ 현지답사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校標발견자인 김진목씨와 김기석씨의 안내로 본 연구소에서 현장답사를 실시한 바 校標가 있는 바위까지는 장장 3시간 30여 분만에 마침내 법수치리 갈밭구미 현장에 도착하여 校標가 새겨진 바위를 확인하였는데, 교표각자(校標刻字)가 위치하고 있는 장소는 장리(獐里)마을의 교계(校界)가 있는 장소와 같이 물이 흐르는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지 않았다.

校標가 있는 장소에 도착한연구원들은 교표각자를 한지로 탁본(拓本) 작업을 한 다음 지형을 살펴보니, 1975년 건설부 국립지리원(建設部國立地理院)에서 제작한 지도에 사람들이 살았던 가구가 표기 되어있는 것과 같이, 물이 흐르는 계곡에 인접한 지역에 아주 작은 분지(盆地) 형태로

주거 흔적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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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았던 주거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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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만든 교표로 가는 통로>

 

 

이곳에는 예전에 4~5가구의 화전민(火田民)이 살고 있었는데 당시 인접 마을인 면옥치리(綿玉峙里)에서 무장공비(武裝共匪)들이 출몰하였던 곳이므로 정부에서 취약지구(脆弱地區) 독립가옥(獨立家屋) 이주대책(移住對策) 사업으로 모두 철거하고 안전한 곳으로 주민들을 이주시켰다.

또한 이 지역 원로주민들에 의하면 지금의 장리(獐里)에서부터 어성전(漁城田)과 법수치(法水峙)에 이르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나 있지만, 예전에 큰 도로가 없었던 시절 장리 마을에서 달하치 고개를 넘어 면옥치리 마을을 지난 후 법수치 본 마을을 우회해서 현 임도(林道)를 따라 갈밭구미로 다니는 옛 길이 있었고, 지금도 면옥치 마을 주민들은 주로 이길을 따라 버섯 등 산지부산물을 채취하러 다닌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길은 지난 2013년 장리 달하치에서 발견된 교계각자(校界刻字)에서부터 법수치리 갈밭구미에 새겨져있는 교표각자(校標刻字)로 이어져있어 이 2개의 각자가 군사적인 목적을 내포(內包)하고 있는 길로 연관지어볼 수 있다.




■ 양양문화원향토사연구소의활동



양양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에서는 고문헌과 각종자료들을 수집하여 校標라는 刻字의 의미를 찾기 위해 다각 도로 노력하였다. 여기서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양양지역의 심산계곡(深山溪谷)에서만 校標와 校界란 암각글자가 발견되는 것인지? 또 한 언제 누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글자를 바위에 새겼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전거(典據)는 찾지 못했으나 지난 2014년「校界에 관한 歷史的考察」의 학술토론회의에서 정의(定意)를 내린 것과 같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새겨진 표시임은 부정(否定)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진다.

양양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원협회가 주관하는 제33회 전국향토문화공모전에서 ‘새로 발견한 교표각자(校標刻字)’를 주제(主題)로 한 내용으로 2018년 12월 4일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사무총장으로부터 지방문화원 향토문화 연구실적 부문에서 특별상

을 수상 받아 학계에 주목을 받은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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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표 제보자인 김진목과 김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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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작업 모습>

 

 

양양지방은 삼국시대 이후부터 변방 지역이었던 관계로 전쟁과 관련된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고장이다. 한자 자전(字典)에 교(校)의 뜻은 학교(學校)ㆍ장교(將校)ㆍ군대(部隊)ㆍ군영(軍營)ㆍ울타리ㆍ 바자울(대나무, 갈대, 수수깡, 싸리나무 등으로 만든 울타리) 등 이라 했다.

따라서 기존에 학술토론회에서 교계 각자(校界刻字)가 군사훈련장으로써 민간의 접근을 금지하는 금표(禁標)의 의미를 함축하였다면, 校標(교표)도 군사와 관련된 용어로써 과거 이곳에 군부대가 주둔하였던 위치를 알리는 표시가 아닌 가 추정해 보았으며, 앞으로 향토사연구소에서 심층적인 연구로 전국에서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교표각자(校標刻字)에 대한 의미가 밝혀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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