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어성십경창화시

1. 漁城十景總題 어성 10경을 함께 쓰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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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393회 작성일 21-02-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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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漁城十景總題 어성 10경을 함께 쓰다-1


10쪽


吾人浪迹遍漁城 우리가 어성(漁城)을 두루 유람하며

搜怪探奇十景成 기이한 경치 찾아 10경을 이루었네.

漢地山川傳太史 한(漢)나라의 산천은 태사공(太史公)16)이 전하였고

仙源花竹記淵明 선원(仙源)의 화죽은 도연명(陶淵明)17)이 기록하였지.

世無眞隱誰能賞 세상에 참된 은자 없으니 누가 잘 감상할 수 있으랴?

詩得假鳴乃有聲 시가 우는 소리 빌릴 수 있어야 곧 명성이 있으리라.

說播笛鍾雲與月 피리와 종소리와 구름과 달을 말로 전달함에

魚龍泉瀑夕烟生 저녁 안개는 폭포에서 어룡처럼 피어난다.

龍洲(용주) 李容璇(이용선)


漁肇得名錫此城 고기잡이로 일찍 이름 얻음이 이곳에 내려져

水回山抱亦天成 물도 산을 감아 도는 것이 자연스럽다.

打楸餘韻風吟好 호두 따는 시18)의 여운은 바람에 읊기 좋고

鋟石遺毫月鑑明 돌에 새겨 남겨진 붓 자국은 달이 비추어 밝구나.

誰識千年藏別界 천 년을 별천지 감추어져도 누가 알겠나?

爲題十景播新聲 10경을 써서 참신한 운율을 알리노라.

遊人奇覽從今始 노니는 사람의 특별한 유람은 이제 시작이니

隨處登臨樂意生 가는 곳마다 즐거운 뜻 생겨나네.

星史(성사) 李三在(이삼재)


晴川碧樹繞漁城 맑은 시냇물과 푸른 나무가 어성을 둘렀는데

戶始成村村號成 집이 처음 마을을 이룰 때부터 어성이라 불렀네.

泉石居然多擅美 물의경치여전히 많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人文自是互開明 인간의 문명은 이로부터 서로 밝음을 열었어라.

剩占釣水樵山樂 낚시와 땔나무 하는 즐거움에 넉넉히 여유롭고

穩聽耕雲讀月聲 흐르는 구름과 달빛에 독서 소리 편안히 듣네.

欲識箇中奇絶景 그속에 기이한 경치을 알고자 하니

環屛十幅畫圖生 10폭 그림이 생생하게 둘러싸고 있구나.

南崗(남강) 崔永宅(최영택)


襄南十景一漁城 양양 남쪽 10경 가운데 첫 번째가 어성으로

畫手猶難盡意成 그림으로 그 풍광 다 표현하기 오히려 어렵네.

筆下雲烟連樹暗 붓 아래 안개는 숲으로 이어져 어둡고

鏡中水月繞山明 거울 속에 물과 달은 산을 둘러 밝구나.

梅老遺居高世志 매월옹 유거지는 고상한 세상의 뜻이요

蔡公詩韻大家聲 희암공 시의 운치는 대가(大家)의 소리로다.

鍾得地靈多淑氣 땅이 신령하여 맑은 기운 많이 모아 얻으니

幾人魁傑此間生 이곳에서 난 뛰어난 인물들 그 얼마이런가?

秋畹(추원) 宋達顯(송달현)


龍洲健筆畫漁城 용주(龍洲)19)는 씩씩한 필치로 어성을 그려내었는데

其妙應從所見成 그 묘함은 응당 본 것을 따라 이룬 것이라오.

居人別業同摩詰 사는 사람의 별장은 마힐 (摩詰,王維)과 같고,

隱者草堂倣孔明 은자의 초당은 제갈공명과 같네.

移山磅磚多包氣 산의 울퉁불퉁함을 옮기니 기를 가득 품었고

記水淺深只欠聲 물의 얕고 깊음은 기록해도 다만 소리가 없구나.

爲余來說丹靑裡 나를 위하여 와서 그림 안에 머물라 하는데

不老景光十處生 늙지 않는 풍경 열 곳이 생겼구나.

東溟(동명) 崔燦時(최찬시)


五臺北落一層城 오대산의 북쪽 끝에 한 층의 성이 있으니

兩水合流村復成 두 물이 합쳐 흘러 마을이 거듭 이루었구나.

多小人家烟樹暗 많은 인가에 밥 짓는 연기로 숲은 어둡고

皥熙世界洞天明 태평한 세상에 골짜기 하늘은 밝기도 하네.

秋來鷄黍居田味 가을이 오면 닭과 기장밥은 전원에 사는 맛이요

日暮漁樵嗅渡聲 저물녘 어부와 나무꾼은 건너온 냄새에 소리 낸다.

直欲遍尋幽絶處 곧장 경치 좋은 곳을 두루 찾고 싶으니

與君偕隱送餘生 그대와 함께 은거하여 남은 생을 보내리라.

小山(소산) 李濟眞(이제진)


城外靑山山外城 성밖에 청산 있고 청산 밖에 성이 있으니

滿城新景品題成 성안 가득 새로운 경치를 시로 읊네.

谷蘭莫恨幽香沒 골짜기 난초 그윽한 향 없다 한하지 말지니

淵玉終能寶氣明 연못의 옥(玉) 끝내 보배로운 기운 밝으리라.

烟月雲暉多物態 안개와 달빛에 흐린 구름은 많은 자태를 만들어도

笛鍾泉瀑古音聲 피리와 종소리 폭포 소리는 옛 소리 그대로다.

何時漁子觀魚法 어느 때나 어부의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울까?

龍沼無人急瀨生 용소(龍沼)는 사람이 없어도 급한 여울 생기네.

錦樵(금초) 黃晩源(황만원)


行尋佳境到漁城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어성에 도착하니

奇景重重別局成 기이한 경치 거듭하여 별세계를 이루었네.

瀑魚灘烟泉樹合 샘과 나무 만남에 폭포에 물고기 여울에 , 안개 있고

雲鍾月笛多暉明 석양이 밝으니 구름에 종소리와 달빛에 피리 울리네.

勝城林庄閑了處 아름다운 어성의 숲속 별장은 한가로운 곳이요

騷人風律自然聲 문객이 읊는 시 가락은 자연의 소리로다.

有誰能作琴書客 어떤 거문고를 잘 타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이

活計淸眞度一生 평생 맑고 참되게 살아갈 수 있을까?

石樵(석초) 秋鴻求(추홍구)


五臺一脉繞漁城 오대산의 한 줄기가 어성을 둘렀는데,

淑氣渾然別界成 맑은 기운이 참으로 별세계를 이루었다.

層巒處處風烟好 첩첩한 이곳저곳 바람과 안개가 좋고,

平野漫漫日月明 넓은 평야는 온 벌판에 해와 닭이 밝구나.

原竹澗松千古色 언덕 대나무와 계곡 소나무는 옛 빛깔 그대로요

午舂夕杼一村聲 낮 절구질과 저녁 길쌈하는 소리 마을에 가득하다.

箇中識得東南景 그 가운데 동남쪽의 경치를 알게 되면

無限詩歌次第生 끝없는 시가가 차근차근 우러나리라.

近溪(근계) 李東洙(이동수)


不見漁郞遠市城 젊은 어부를 성 안에서 보지 못했는데

桃源未必別天成 도원이 반드시 하늘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구나.

門巖深邃雲常有 운문암(雲門巖) 깊은 곳엔 구름이 항상 있고

達洞淸虛月獨明 달동(達洞)의 맑고 빈 곳엔 달이 홀로 밝네.

水石多年誰復管 물과 바위 여러 해 동안 누가 다시 다듬었길래

笛鍾斜日自爲聲 피리와 종처럼 저녁노을에 스스로 소리를 내는가?

愛山詩客如舟子 산을사랑하는 시인은 뱃사공처럼

更覓今春景色生 올봄의 경치가 나타나는 곳을 다시 찾았구나.

峴愚(현우) 李現在(이현재)


襄州名勝有漁城 양양(襄州)의 명승지는 어성에 있는데

闢地爲田里落成 농사를 위해 땅을 개간하여 마을을 이루었네.

一洞中開頗廣濶 한 골짜기 안을 열어보면 자못 광활하고

四山高出最虛明 사방의 산은 높이 솟아 가장 환히 밝도다.

閑情人癖烟霞氣 한가한 마음에 사람들 연기와 노을 기운에 편벽되고

俗尙家傳誦讀聲 세속의 숭상 집안에서 책 읽는 소리 들리는 것이네.

記得此間多少景 이속에 있는 약간의 경치를 기억한다면

文章詩興倍增生 문장과 시의 흥취 배나 생생하리라.

笑堂(소당) 朴永煥(박영환)


詩仙醉筆品漁城 시선은 취한 필치로 어성을 평했는데

城下田村別業成 성아래 전촌(田村)에 별장을 만들었다네.

泉石中分雙水合 샘물은 바위 중간에서 갈라졌다 합하고

洞天南坼四山明 골짜기 하늘은 남쪽으로 열려 사방의 산이 밝구나.

居人未袪烟霞癖 사는 사람은 연기와 노을의 고질병을 버리지 않고

勝地又聞絃誦聲 명승지에서 다시 거문고와 독서 소리를 듣는다.

我欲尋眞君擧手 참된 경치 찾아 그대에게 손짓하고자 하니

景光歷歷指頭生 경치는 손끝에 역력하리라.

雪隱(설은) 李國範(이국범)20)


16) 태사공(太史公):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 BC145경-BC85경)을 말한다.


17) 도연명(陶淵明, 365-427): 동진, 유송 대의 시인으로 당나라 이후 남북조 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동진 시대 지방 하급 관리로 관직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일평생 은둔하며 시를 지었다. 술의 성인으로 불리며, 전원시인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여기서 ‘선원(仙源)의 화죽(花竹)’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화원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18) 호두 따는 시: 본 문집의 서문에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이 이곳 어성(漁城)을 소재로 호두를 따는 시[打楸之詩]를 지었다는 문구가 있다.


19) 용주(龍洲):어성십경의 시모임을 주도한 용주(龍洲) 이용선(李容璇)을 이름.


20) 이국범(李國範, 1869-1931): 강원도 양양 현북면 출생,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4일부터 9일까지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도천면(道川面)과 강현면(降峴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지역의 만세운동은 광무황제 인산에 참례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지니고 귀향한 이석범(李錫範)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석범은 그의 아우인 이국범과 아들인 이능렬(李能烈)을 앞세우고 쌍천학교(雙川學校) 졸업생을 동원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유학자로서 평소 일제의 강제병합에 분개하고 있던 중, 광무황제의 폭붕(暴崩) 소식을 듣고 군내 양반 유생들에게 양양읍 밖에서 요배식(遙拜式)을 거행하도록 하는 등 항일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형으로부터 만세운동 계획을 들은 이국범은 이에 적극 참여하여 김영경(金英經)·장세환(張世煥) 등과 도천면과 강현면 주민들을 동원하여 4월 4일부터 9일까지 연 6일 동안 읍내 대포(大浦)·물치(沕淄)·왕도(旺道)·기사문(其士門) 등지에서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7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