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어성십경창화시

어성소서(漁城小序) - 원문과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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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44회 작성일 2021-03-01 11:58

본문

漁城小序 


大凡天下山水之名勝, 不在山水而在於人也. 武夷之九曲, 以晦庵而抎名, 香山之八節, 白傅而傳名. 且如峴山之小者, 而因叔子而著名, 如桃源之僻焉, 而因漁子而知名. 然則 今此漁城十景, 亦非其因人而成名者耶. 盖漁城, 余所景慕之地, 而一年一度處也. 地在 郡之南五十里, 幽深靜僻之間, 山明水麗泉甘土肥, 猶爲可居之地, 而但人文未闢, 風俗淳 尨而已. 溯其往跡, 則曾有梅月翁採芝之墟, 又有蔡希菴打楸之詩而後, 則無聞焉. 李友 容璇, 訓學于漁城之二年, 獨得山水之趣, 粧點泉石品題, 雲樹第次十景, 而詩以記之. 仍 求詩於一郡之文人, 歌詠而贊美之. 於是乎漁城之勝名, 著於襄之南矣. 余故曰, 山水之 名勝, 不在於山水而在於人也云爾.

戊午仲春上澣南崗散人崔永宅謹序


어성소서(漁城小序) 


  무릇 세상 산수(山水)의 경치가 좋은 곳은 산이나 물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

  무이(武夷) 1) 의 구곡(九曲)은 회암(晦庵) 2) 선생 때문에 이름을 떨쳤고, 향산(香山)의 팔절(八節) 3) 은 백부(白傅, 백거이)가 이름을 전하였다. 또 현산(峴山) 4) 과 같은 작은 것은 숙자(叔子, 양호의 자)로 인하여 이름을 드러냈고, 도원(桃源) 5) 의 후미진 곳도 어부(漁夫)로 인하여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어성(漁城) 6) 의 십경(十 景) 또한 그에 합당한 사람으로 연유하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는 것인가?

  대개 어성은 내가 우러러 좋아하는 곳이지만, 일 년에 한 번 가는 곳이다. 땅은군(郡, 양양)의 남쪽 50리의 그윽하고 깊어 고요하고 궁벽한 사이에 있지만, 산은밝고 물은 아름답고 샘물은 달고 땅은 비옥하니, 오히려 거처할 만한 땅이다. 그러나 단지 인문(人文)이 궁벽하지 풍속(風俗)은 순수하고 넓을 뿐이다.

  지난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찍이 매월옹(梅月翁) 7) 이 영지(靈芝)를 채취하던곳이며, 채희암(蔡希菴) 8) 의 호두를 따는 시[打楸之詩] 9) 이후에는 들은 바가 없다.

  벗인 이용선(李容璇)이 어성에서 2년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홀로 산수(山水) 의 흥취를 얻어 샘물과 바위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구름과 나무를 평하여 순서에 따라 열 가지 경치를 시로 썼다. 이에 군(郡) 안의 문인들에게 시(詩)를 구하니, 그것을 읊고 찬미하였다. 이에 어성의 아름다운 이름이 양양 남쪽에 드러나게 되었다.

  내가 그래서 산수(山水)의 경치가 좋은 곳은 산이나 물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고 할 뿐이다.

  1918년 2월 초순(初旬)에 남강산인(南崗散人) 최영택(崔永宅) 10) 이 삼가 쓰다.



1) 무이(武夷):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에 있는 산 이름인데, 산 안에는 아름다운 아홉 골짜기가 있어 이를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고 한다. 주자(朱子)가 일찍이 이곳에서 살았다.


2) 회암(晦庵): 주희(朱熹)로, 자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노인(雲谷 老人)・둔옹(遯翁)이다. 존칭하여 주자(朱子)라고 한다.


3) 향산(香山)의 팔절(八節): 향산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낙양시(洛陽市) 용문산(龍門山) 동쪽에 있다.

당나라 회창(會昌) 연간에 백거이(白居易)가 형부 상서(刑部尙書)에서 치사(致仕)한 뒤에 이곳에 석루 (石樓)를 짓고 향산거사(香山居士)라 자호(自號)하였으므로 향산은 백거이의 이칭으로 쓰인다. 백거이는 이때 낙양에서 여덟 명의 노인[八節]과 함께 구 로회(九老會)라는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서로 술과 시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新唐書 卷119 白居易列傳≸ 4) 현산(峴山): 현산은 중국 호북성(湖北省) 양양시(襄陽市) 남쪽에 있는 산이다. 진(晉)나라 양호(羊祜)가 양양을 지키면서 선정을 베풀었는데, 항상 추윤보(鄒潤甫)와 함께 현산에 올랐었다. 그가 죽자 후세 사람이 덕을 추모하여 현산의 그 자리에 비를 세웠는데 비를 보는 사람마다 슬퍼했다 한다. 그래서 타루비(墮淚碑)라 한다. 우리나라 강원도 양양(襄陽)에도 현산이 있으며, 양양의 이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5) 도원(桃源):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약칭으로, 전하여 선경(仙境)을 의미한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 (桃花源記)〉에,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가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화림(桃花林)이 찬란한 선경을 만나 그곳에 들어가서, 일찍이 선대(先代)에 진(秦)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처자를 거느리고 들어와 대대로 살고 있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수일 후에 그곳을 떠나서 배를 얻어 타고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 그 도화 림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陶淵明集 卷6≸


6) 어성(漁城): 현재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漁城田里) 


7) 매월옹(梅月翁): 김시습(金時習, 1435-1493)으로 호가 매월당(梅月堂), 자는 열경(悅卿)이다. 21세 때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는 보던 책들을 모두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특히 경관과 인심이 좋아 양양을 자주 찾아 심회를 표현하였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 그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 가에 임시 매장하였다고 전한다. 저서로 ≷금오신화(金鰲新 話)≸, ≷매월당집(梅月堂集)≸ 등이 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8) 채희암(蔡希菴):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을 말한다. 자는 중기(仲耆), 호는 희암(希菴)・은와(恩窩),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세자 시강원(世子侍講院)의 벼슬을 지냈고 시와 글씨에 뛰어났다. 저서로는 ≷ 희암집(希菴集)≸이 있다.


9) 호두를 따는 시[打楸之詩]: 어떤 것인지 찾을 수 없다.


10) 최영택(崔永宅): 금계(錦溪) 이근원(李根元, 1840-1918)의 ≷동유일기(東遊日記)≸에 양양(襄陽)에 거처 하는 걸출한 선비라 한 것으로 보아, 금계와 비슷한 연배나 혹은 약간 앞선 시기의 인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