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북부선 종착지 양양역

3) 철도 부설로 인한사회·경제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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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99회 작성일 2021-03-0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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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도 부설로 인한사회·경제적 변화


  일본의 한국철도 부설은 철도 연선의 사회·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철도의 개통과 더불어 전선 각역에서 소운송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그러한 현상의 하나였다. 소운송업은 철도와 함께 출연하여 철도를 매개로 활동하였던 새로운 교통운수업이었다. 그리고 소자본으로도 비교적 자유롭게 경영할 수 있는 업종이었기 때문에 철도를 따라 침투해 왔던 일본인 자본과 객주. 여객 등으로부터 전환한 한국인 자본이 대거 진출하였다. 1926년 무렵 전선 각역에는 1566점의 소운송업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국인 업자는 1,080점(69%)이나 되었다.

  조선총독부의 소운송업 통제 정책은 민족적 편향과 차별성을 띠고 전개되었다. 왜냐하면 영세 소운송업자의 대다수는 한국인이었고 대규모 운송업자의 대다수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의 대자본 위주의 통합정책은 한국인 업자의 호구지책을 박탈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한국인 업자와 하주들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일부 일본인 업자와 연합하여 조선총독부의 통합정책에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출처 : 일제침략과 한국철도】


  기차가 개통되기 전에는 동해안의 소금이나 소금에 절인 생선을 지고 영을 넘어 영서지방에 가서 곡식을 바꾸어오던 보부상이 성행하였으나 열차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은 소자본으로 기차를 이용하여 동해안의 생선을 싣고 중국 만주까지 가서 팔고 돌아올 때는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과일이나 농산물을 싣고 와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여 새로운 부자가 생겨나고 상업이 활발해 졌다. 또한 양양의 철광석과 목재를 운반하기 위한 열차 운행이 큰 역할을 하였다. 역 주변에는 여관이나 상점이 생겨나서 역 주변에는 새로운 거리가 생겨났다.

  해안지방으로 인구도 적고 산업이나 군사적인 면에서도 중요성이 낮았지만 금강산을 비롯한 몇 개의 관광지가 있기 때문에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전날에 경성역(서울)에서 야간열차가 운행되기도 하였고 강릉 삼척 울진지방에서 경성으로 가기 위하여 양양역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