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김성렬(金聖烈) 관향은 경주이며 현산학교를 마차고 다년간 양양면장을 지냈다. 그 치적은 훌륭하였었다.
    ○ 김성서(金聖瑞) 관향은 경주이며 현북면 태어나 한일합병의 치욕에 양양사람으로는 맨 먼저 의병에 가담하여 한국남아의 의기를 발휘하였다. 항일의식과 애국충렬이 강열한 공은 모병장 이강년(李康年)과 더불어 각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고 사력을 다하여 항쟁하니 일병도 손을…
    ○ 김성서(金聖瑞) 관향은 경주이며 일찍이 항일의식이 강하고 의병장 이강년과 더불어 각지에서 전투하고 항쟁하였다. 연곡지구에서 일군(日軍)과 싸우다가 부상된 것을 연곡 홍진사(洪進士)의 기별로서 그 자제들이 업고 왔다가 연곡리에서 종신하고 명지리 장지에 모셨다. 현재…
    ○ 김성제(金聖濟) 관향은 경주이며 현산학교 교사로서 한문과 수학을 전담하여 한말 인재양성에 힘을 다하였다. 천품이 쾌활하고 두뇌가 명석하여 산학통편(算學通編)에 능숙하고 만년에는 한의로서 사회사업에 공헌하였다.
    ○ 김세준(金世準) 관향은 김해이며 자는 정숙(正淑)이다. 가락국수로왕 후손으로 사마방에 입격하고 연산 7년 신유(1501년)에 생원에 중종 원년 병인(1506년)에 금오랑(金吾郞)에 통정대부 승정원승지, 중종 2년 정묘(1507년)에 정난공신(靖難功臣)에 봉하였으나…
    ○ 김세환(金世煥) 관향은 강릉이며 구명은 김석준(金錫俊)이다. 강현면 금풍리에서 태어나 양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강원도사범학교 입학하여 졸업 후 속초 영랑 유천 안변 각 학교를 거쳐 광복 후 서울시장학사를 지내고 부평국민학교 등 몇 학교교장을 역임, 5척단…
    ○ 김세환(金世煥) 관향은 경주이며 강현면 금풍리 태생으로 구명은 김석준이다. 강원도사범학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 중 속초에서 해사를 하기도 하다가 광복 후 서울시 장학사로 행정수완을 발휘하고 인천국민학교장을 지냈다.
    ○ 김수영(金壽永)[명종(明宗) 10년 을묘(1555년) 3월 29일자 명종실록에 실려 있다.] 세종 때 충순위(忠順衛)였던 김공은 부모가 돌아가자 몹시 슬퍼하여 뼈만 남았었지만 채소와 과일도 먹지 않고 3년간 죽만 먹었으며, 또 스스로 하늘에 맹세하는 글 132자를…
    ○ 김수형(金秀珩) 관향은 경주이며 현북면 태생이다. 어려서부터 효경이 비범하여 이웃에서 어떤 좋은 음식이 생기면 싸가지고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먼저 받혔다. 결혼 후에는 처 김씨와 함께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본래 집이 빈한하여 쌀을 구하러 영서에 갔다 돌아오는 …
    ○ 김수형 처 강릉최씨(金秀珩 妻 江陵崔氏) 현북면에 거주하며 부인 강릉최씨는 시부모에 효행이 지극하였다. 그 부친병환 시에 손가락을 잘라 주혈 하여 회생하였으나 다시 병들어 사망하였다. 따라서 죽으려 하였으나 참고 오직 남은 분들에게 더욱 효행을 다하였으며 조발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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