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혁 처 경주김씨(金振爀 妻 慶州김氏)(1868∼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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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388회 작성일 11-02-1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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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혁 처 경주김씨(金振爀 妻 慶州김氏)(1868∼1940년)

김정순(金正舜)의 딸로 어려서부터 예의와 효행이 몸에 베이도록 곱게 성장하여 강현면 사교리 강릉김씨 문중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된 진혁(振爀) 일명 진규(振圭)에게 시집오니 나이는 18세였으며 10년 동안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 독자 운기(雲起)를 득남한바 남편은 시름시름 병에 누워 김씨는 약을 구해 다니면서 북두칠성께 빌며 대신하기를 애걸하였으나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통곡(1895년 3월 13일)에 같은 무덤 속에 따라 들려하다 생각을 바꾸고 나서 엄숙하게 양례(襄禮)를 마치고는 머리도 빗질하지 않고 새 옷도 입지 않으면서 미망인으로서의 곧은 절개를 지켰다. 차차 몸이 쇠약해져가나 부지런히 농사일에 힘써 건전하게 집안을 다스리며 홀로된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외독자를 바르게 키웠으니 그의 아들도 효자였다. 또한 손자 다섯(남하, 남학, 남송, 남필, 남섭)을 훌륭하게 자라도록 돌보고 나서 세상을 뜨니 꽃다운 김씨의 행실이 널리 알려져 양양군유림(襄陽郡儒林)에서 추천하니 유회포창사(儒會襃彰社)에서 1941년 정월에 찬양문을 내려 비석을 세워 팔도에 유방(流芳)하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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