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김진권(金鎭權)(1804∼1877년) 관향은 경주이며 서면 태생이다. 서면 상평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공촌(恭村)이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예의범절이 출중하였을 뿐 아니라 성장하면서 어버이 섬기기를 내 몸 같이하여 빈한한 가정임에도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으로 봉양하…
    ○ 김진우(金振瑀)(1872∽1961년) 관향은 강릉이며 현산학교를 졸업한 후 경찰관을 지냈고 일찍 실업하여 치산(治産)하였다. 인후한 인격자로서 자제교육에 열성을 다하여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전 김인기(金寅起) 국회의원의 부친으로 입지인이다.
    ○ 김진인 처 횡성진씨(金振仁 妻 橫城陳氏) 진씨는 나이 20세에 남편의 죽음을 당함에 단지 수혈하여 반일 연명하였다가 결국 사망하니 동시 자결코자 수일간 음식을 전패하고 밤에 뒷편 감나무에 목매었으나 집사람들에 발각되어 자살미수하였다. 열녀로 칭송이 자자했다.
    ○ 김진택(金振澤)(1876∽1943년) 관향은 강릉이며 강현면 적은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시문과 바둑에 능하였고, 자녀 신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강현면장을 지냈고 호를 몽팔(夢八)이라 하였다.
    ○ 김진혁 처 경주김씨(金振爀 妻 慶州김氏)(1868∼1940년) 김정순(金正舜)의 딸로 어려서부터 예의와 효행이 몸에 베이도록 곱게 성장하여 강현면 사교리 강릉김씨 문중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된 진혁(振爀) 일명 진규(振圭)에게 시집오니 나이는 18세였으며 10…
    ○ 김창건(金昌建)(1911∼1973년) 관향은 경주이며 양양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만주에서 중국어․일본어․러시아어 통역 및 운전기사로 종사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수복 후에는 양양치안대 경비주임으로 치안유지와 반공투쟁에 앞장섰다. 공직생활과 이장직도 맡아보았다.
    ○ 김창경 처 안동김씨(金昌卿 妻 安東金氏) 김용근(金溶根)의 딸인 김씨는 남편의 병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하였고 운명 시에는 단지급혈 하여 3일 연명하는 신효를 보았다. 향리에서는 열녀로 칭송하여 군읍(郡邑)에서는 표창하였다.
    ○ 김창렬(金昌烈)(?∽1978년) 관향은 경주이며 양양읍 내곡리에서 태어나 양양보통학교와 개성송도고등보통하교를 졸업하고 다시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이어 군속이 되어 춘천, 철원, 강릉, 철원군에 근무하다가 1944년 3월 영월군수가 되…
    ○ 김천종(金天宗) 관향은 강릉이며 충정공 김기종의 아우로서 생원으로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
    ○ 김철기(金鐵起)(1882∽1949년) 관향은 강릉이며 강현면 사교리에서 태어나 3·1운동 때 선두에서 동민을 이끌고 만세운동에 참가, 일경에 체포되어 3년여 옥고를 당하고 1947년 호림부대가 이 고장에 들어왔을 때 앞장서서 모든 조직과 연락하여 부대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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