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완, 효(盧 玩, 涍)(1795∼1865년), 임수(恁秀)(1841∼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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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755회 작성일 11-02-1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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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완, 효(盧 玩, 涍)(1795∼1865년), 임수(恁秀)(1841∼1920년)

관향은 광주이며 완(玩)의 자는 사연(士淵)이고 호는 운곡(雲谷)이다. 효(涍)의 자는 명거(溟擧)이고 호는 석암(石庵)이다. 임수(恁秀)의 자는 성신(聖信)이고 호는 석초(石樵)이다. 玩공은 헌종 14년 무신(1848년)에 사마진사, 효(涍)공은 1827년(순조 27년 정해)사마진사하고 조습훈육 문예숙취 부탁락근신근엄(早襲訓育 文藝夙就 孚卓犖謹身謹嚴)하며 서울 명문가와의 교제가 깊었다. 임수(恁秀)공은 고종 19년 임오(1882년)에 사마진사에 효겸천(孝兼薦)받았다. 삼부자 3세 진사한 명문가이다. 모두 근직하여 세도를 행사함이 없이 오히려 부정한 향반(鄕班)을 타기(唾棄)하고 또 훈도(薰陶)하고 교도하였으며 시문 경서에 정통하고 3부자 사마성균관 진사였다. 명거공은 전국 방방곡곡을 편답(遍踏)하면서 음풍영시 경학을 토론하고 일평생 유랑하면서문장의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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