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노재철(盧在澈)(1906∼1976년) 관향은 광주이며 호는 만오(晩梧)이다. 한학이 풍부하여 시문에 능하고 극진히 효도하며 유교의 대가로 전교를 지성으로 집행하여 이름이 높았다.
    ○ 노재흥(盧在興)(1907∼1962년) 관향은 광주이며 한문을 수학하고 양양보통학교를 졸업 후 농업에 종사한 관후한 인물이었다. 1950년 수복 후 양양면장을 역임하였으나 모함과 오해로 많은 고초를 받았다.
    ○ 노중경(盧重慶) 관향은 광주이며 자는 산여(山如)이다. 안정(安鼎)후예로 순조 5년 을축(1805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좌랑을 지냈다.
    ○ 노택경 처 강릉최씨(盧宅慶 妻 江陵崔氏) 손양면에 거주하며 노씨댁에 출가하여 시부모를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였다. 남편이 병이 들자 하늘을 우러러 대신 죽겠다고 기도를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로 3차례나 손가락을 잘라 주혈 하여 잠시 회생하였다가 사망하였다. 눈물로 …
    ○ 도의국사(道義國師) 속성은 왕(王)씨이고 법호는 원적(元寂), 선덕왕 1년(780년)에 당나라에 가서 지장(智藏)의 제자가 되어 그 불법을 물려받고 도의라 개명하고, 821년에 귀국하여 남종선(南宗禪)을 전하였으며 마침내 서라벌을 떠나 멀고 먼 북산에 당도한 곳이…
    ○ 동구리(同仇里) 1460년대 양양의 관노(官奴)였다. 조선 세조 12년(1466년)에 세조대왕(世祖大王)은 정희왕후(貞憙王后), 세자와 같이 낙산사 법당에 향폐(香弊)를 드리는 불사를 행하고 동년 윤 3월 14일 장막(帳幕)안 어전(御前)에서 개최한 농가경창대회에…
    ○ 박경하(朴敬夏) 관향은 밀양이며 한학에 열중하였으며 한의원을 개업하여 인술을 베풀어 빈한자를 포시했다. 강현면 일대에서 호감을 얻었다.
    ○ 박경훈(朴景勳) 관향은 밀양이며 교관수린(敎官受麟) 자개당기위(子個儻奇偉) 효우독학(孝友篤學) 의금부 도사(都事)를 지냈다.
    ○ 박광언(朴光彦) 관향은 강릉이며 호는 매은(梅隱)이다. 시문과 경학에 능하고 가돈훈학(家墪訓學)하였으며 식산(殖産)의 재(才)에 장(長)하고 자수성가한 경학의 대가이다.
    ○ 박도환(朴道煥) 관향은 강릉이며 강원도교원양성소를 수료한 후 정선에서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2종훈도시험에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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