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박종문(朴鍾文) 관향은 강릉이며 자는 의숙(懿叔)이다. 인조 17년 기묘(1639년)에 사마가 되었다가 장락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 박종순(朴鍾舜) 관향은 밀양이며 성내리 태생으로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북경대학을 중퇴하고 귀경하여 실업계에 투신하였다. 광복 후 재산을 정리하고 조선일보를 경영하기도 했다.
    ○ 박종승(朴鍾勝)(1894∼1973년) 관향은 밀양이며 자는 화응(和應)이고 초명은 태자(泰字), 호는 기재(杞齋)이다. 한문에 조예가 깊고 1912년 현산학교 3년을 졸업하고, 1914년 경성의과전문학교 3년을 중퇴한 후 6년간 양양군청 용원으로 근무 중 1920…
    ○ 박증길(朴曾吉)(1919∼1982년) 관향은 강릉이며 호는 학봉(鶴峰)이고 손양면 학포리 태생이다. 성균관학원에서 한학을 수학 시문에 능하였다. 군교화주사(郡敎化主事)로 활약하다 광복 후 민주당을 조직하고 반공에 선봉하였으며 군정(軍政) 때는 부군수와 행정이양 후…
    ○ 박증노(朴曾魯) 관향은 강릉으로 호는 근암(近庵)이다. 시문에 능하였다.
    ○ 박지의(朴志誼) 관향은 강릉이며 양양군 태생이다. 호를 이재(彛齋)라하고 벼슬은 가선(嘉善)이 되었으며 소생이 독효(篤孝)하여 유령실모(幼齡失母)하고 읍혈과애(泣血過哀)이나 부친은 엄유(嚴諭)하여 불감진정(不敢盡情)이고 부친에게는 효성하는 한편 부친 병에 상분단지…
    ○ 박창권(朴昌權)(1925∼1993년) 관향은 무안이며 황해도 장영 출신이다. 어려서 장영국민학교를 거쳐 장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광복 후 황해도 축구선수로서 1946년 해주에서 도대항 축구경기가 있을 때, 팀에서 이탈 월남하여 백령도에 들어가 호림부대에서 활동 중…
    ○ 박창희(朴彰喜) 관향은 밀양으로 문장에 명성이 높고 그의 형 우희(雨喜)와 더불어 출중한 인물로 참봉직을 받고 시문으로 여생을 보냈다.
    ○ 박철선(朴鐵鮮) 관향은 밀양이며 양양읍 군행리 이상호(李相浩)의 부인인데 효성이 지극한 근세의 모범인이다. 가정은 빈곤하고 자녀가 많은 대가족으로 나이 많으신 시부모를 모시고 지성을 다하였다. 시아버지는 반신불수로 기거가 여의치 못하고 대소변의 처리도 손수 가려주…
    ○ 박 호(朴 灝) 관향은 강릉이며 호는 리조(梨粗)이다. 효종 원년 경인(1650년)에 사마진사 명문이 높고 누차 천거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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