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권(朴昌權)(1925∼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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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4,506회 작성일 11-02-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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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권(朴昌權)(1925∼1993년)

관향은 무안이며 황해도 장영 출신이다. 어려서 장영국민학교를 거쳐 장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광복 후 황해도 축구선수로서 1946년 해주에서 도대항 축구경기가 있을 때, 팀에서 이탈 월남하여 백령도에 들어가 호림부대에서 활동 중 6·25한국전쟁이 발발하니 국군에 편입하여 육본에서 근무하다가 제1군단에 소속되어 특무상사로 참전(군번 : 6200206)한바 대관령 전투에서 부상 의병제대하고 1군단 민사처에서 민사행정의 업무를 수행 중 당시 양양군민정관 박종승(朴鍾勝)을 만나 16만명 양양군민의 구휼(救恤)활동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양양군과 인연이 되어 행정수복 후 양양군청과 양양교육청에 근무하게 되면서 특히 양양의 체육진흥에 많은 공로를 세웠다. 공의 부인은 여성지도자이신 황일선(黃一仙)여사인데 혼인의 일화가 오랜 역사와 미련이 있어 소개한다. 580년 전 조선(朝鮮) 세종조(世宗朝)때 양가(兩家)가문의 선조가 조정의 같은 부서의 관직에 있으면서 맺은 인연이 계속되어 박공(朴公)이 경상도에 내려가 교직에 있는 황여사(黃女史)를 만나 혼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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