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하(安炳夏)(1928∽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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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734회 작성일 11-02-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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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하(安炳夏)(1928∽1988년)

관향은 순흥이며 양양읍 남문리 태생이다. 양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제국중학교(?)를 거쳐 광복 후 서울 대동상고를 졸업하고, 1948년 11월 육사 8기로 입학하여 6개월 후인 1949년 5월 23일자 임관하여 6·25한국전쟁당시 일선장교로 활약한 기수였다. 동기생인 김종필 김형욱 등은 5․16혁명의 주역이 되었으며, 황영시 차규헌 등은 전두환과 함께 12․12거사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6·25한국전쟁 초기 6사단 포병부대 소위로서 소양강 전투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켜 춘천시민이 안전하게 피난하게 한 공훈으로 1951년 5월 7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참전 중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가랑잎 속에서 3일간 숨어 있다가 후퇴했다고 한다. 1953년 봄 15사단 감찰장교로 간성읍에 주둔 당시 5세 연하인 부인 전임순 여사와 속초중학교 강당에서 보통학교 동창들이 축하하는 가운데 혼인식을 올렸단다. 공은 이어 사단 감찰참모, 대대장, 부연대장을 지냈고 1962년 11월 2일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공은 예편 다음 날인 11월 3일 총경시험에 응시 합격함으로써 군 감찰장교의 경력을 인정받아 내무부 치안국 정보계장을 시작으로 부산경찰서장, 서울 서대문경찰서장, 내무부 치안국 방위과장, 1974년 강원도경찰국장, 1976년 경기도경찰국장, 1977년 치안본부 제2부 경비과장, 1979년 전남도경찰국장을 역임하다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1980년 6월 2일자 직무유기를 이유로 불명예강제 해임되니 17년 7개월간의 민권경찰생활을 마감했다. 당시 고문의 후유증을 요양하기 위해 낙산사도 다녀갔으나 1988년 10월 10일 끝내 영민하고 고혼은 구천을 헤매니 2005년 11월 24일 경찰청은 과거사 진상 조사 결과를 토대로 순직 사실을 확인하고 유해를 국립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시켰다. 2006년 8월 서울지방보훈청은 순직경찰로 등록하였다.(설악의 근현대 인물사 엄경선지음 마음살림(출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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