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효대사(元曉大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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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4,985회 작성일 11-02-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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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元曉大師)

신라 진평왕 39년(617년)에 태어나 신문왕 6년(686년)에 사망하였다. 속성은 설(薛)씨이고 아버지는 담날(談捺)이다.

29세에 출가하여 황룡사에서 수도하다 34세 때에 동학하던 의상과 함께 불법을 닦으러 당나라에 가던 길에 요동에 이르러 어느 무덤들 사이에서 한 밤을 자던 중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한 그릇 마셨던 바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 속의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깨닫기를 ‘심생즉종종법생 심멸즉촉루불이(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髑髏不二 :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라 하신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하고 바로 귀국하고서 통불교[(通佛敎) : 원효종 분황종 해동종]를 제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다가 하루는 마음이 들떠 거리에 나가 노래하기를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느냐,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하니 태종이 알아차리고 요석궁(瑤石宮)의 홀로된 공주와 짝하게 하여 설총[(薛聰) : 신라 십현의 제일인]을 낳았다. 그 후 실계(失戒)한 원효는 낙산사가 명찰이라는 말을 듣고 양양 땅에 들어와 바로 낙산이 보이는 들녘에서 벼를 베고 있는 여인[관음보살의 화신] 또 맑은 시냇가 다리 밑에서 생리대 빨래를 하는 여인과 희롱하다 발길을 재촉 낙산사로 가려는데 들 가운데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휴제호화상[(休醍醐和尙) : 그만두게 불성이 뛰어난 훌륭한 스님!]” 크게 한마디 조롱하는 듯 울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서 낙산사 법당에 들어가 크게 뉘우친바 있다는 전설이 있다.

원효는 설악산 관모봉 위 동해 일출이 바라보이는 자리에 일출암(日出庵)을 짓고 2년 뒤인 신문왕 9년(689년)에 영혈사를 창건하였으며 이어서 관모봉 동쪽 큰 청연골에 청연암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영혈사의 영천을 나눠 홍련암 옆에 샘이 솟게 하였다는 전설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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