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권 구(權 絿) 관향은 안동이며 호는 탄림(灘林)이다. 참의 응기의 증손 명제윤증문(明齊尹拯門)에 수업하였다. 예와 학행이 높아 경종조에 감역을 지냈고 오복편람(五服便覽)을 저술하니 공의 유집이다.
    ○ 권병연(權炳淵) 손양면 간리 고개에서 거주하였다.(현재의 위치 : 손양주유소 뒤편 영광건재 자리) 1919년 기미 삼일독립만세운동 당시 선두에서 함홍기 선생과 같이 적수공권으로 양양경찰서 서장실에 뛰어들어 테이블을 뒤집으며 만세를 외치다 왜경의 총검에 즉석에서 순…
    ○ 권오명(權五明) 관향은 안동이며 풍채 늠름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가히 호걸형이었다. 시문도 능하고 현북면장으로 치적도 높다.
    ○ 권오옥(權五玉) 강현면 사교리에 거주하면서 남편과 사별 후 청춘으로 40여 년을 수절하면서 오직 빈곤한 생활 속에서도 항상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시동생들의 양육과 교육에 힘쓴바 크므로 그의 효행이 부녀들에게 귀감이 되므로 1965년 1월 5일 대한민국 교…
    ○ 권용규(權用圭)(조선) 고종 신미(1871년)에 부임하여 부민호상오리(富民好商汚吏)들이 사용하던 도량형기가 공정치 못하여 세민(細民)을 착취함으로 민간의 도량형기를 몰수하고 일정한 규격을 정하여 낙인을 찍어 부정불법을 엄금하였다.
    ○ 권중민(權中敏)(조선) 순조 계미(1823년) 3월에 부임하고 2년 후인 1825년 6월에 폄천(貶遷)되다. 계미년 부임이래로 법으로써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백성을 공평하게 잘 다스렸다. ‘계미래치민이법불편부당’(癸未來治民以法不偏不黨)하여 불망비가 현산공원…
    ○ 권혁주(權赫柱)(1933∽1986년) 관향은 안동이며 횡성 태생이다. 10세 때(조부모, 선친 따라)에 횡성에서 현남면 남애3리로 이주하였다. 강릉제일고를 졸업한 후 가업인 농업에 꿈을 키우다 1970년도에 양양군농촌지도자연합회장으로 열악한 농촌의 농가소득증대를 …
    ○ 김 강(金 橿) 관향은 경주이며 구명은 민수(敏守)이고 양양읍 성내리 태생이다. 강원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평해․이천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석왕사(釋王寺)에 들어가 독학하여 사법 시험에 합격하여 만주국에서 개업하였다. 광복 후 귀국 강릉지청 검사가 되었다가 다시 춘천…
    ○ 김건수(金健秀) 관향은 연안이며 손양면 태생이다. 부친 병환 시는 분의 맛을 보고 하늘을 우러러 대신 죽겠다고 기원하였으며 절명하게 되자 단지주혈 하여 회생되어 2년이나 연명했다. 그 후 다시 득병하였을 때 그의 둘째 동생 윤진(倫秦)이 단지주혈로 회생하였다가 세…
    ○ 김경길(金景吉)(1642∼1727년) 관향은 강릉이며 강현면 적은리에 행적비가 세워져있다. 호는 묵간(黙幹), 군기감 효온(軍器監 孝溫)의 후손이다. 14세에 모상을 당하고 어린나이에 3년을 시묘하였으며 시시왕래(時時往來)하며 부친을 문후하였다. 그 후 시묘가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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