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이교하(李敎夏) 관향은 함평이며 자는 대일(大一)이라 하고 일제강점의 치욕을 보복하기 위하여 의분심을 갖고 항일투쟁의 뜻을 품었다. 의병소집장 이강년(李康年)의 휘하에서 관동지방도처에서 일병과 항전하였다. 10여 년 간 일제에 항거하고 집안일은 돌보지 아니하고 평…
    ○ 이교학(李敎學)(1902∼1970년) 관향은 함평이며 호는 서석(西石)이고 본명은 원행(瑗行)이다. 한학이 풍부하고 시문일수(詩文一首)도 잘했다. 예절바르고 인격이 고상하여 신구친교(新舊親交)를 좋아하고 목상을 하면서 양양읍 서문리에서 살았다.
    ○ 이구영(李龜榮)(조선) 광무 경자(1900년) 12월 부임하고 이듬해 1901년 10월 체귀했다. 경자년에 부임하여 향교와 동해묘를 중수하고 법도있게 백성을 다스리고 직접 현장에 나가서 대소민들의 근심걱정을 잘 살폈다. ‘경자래향교급동해묘중수치민유도궁자근고찰대소민…
    ○ 이규남(李圭南) 관향은 경주이며 반일의식이 투철하였다. 부친 이홍영을 잘 봉양하였으며 반공정신이 강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반공투사였다. 6·25한국전쟁 때 피난도중 병사하니 부친보다 10여 년 전에 사망했다.
    ○ 이규하(李奎河)(1902∼1978년) 관향은 전주이며 호는 성서(星棲)이고 손양면 송현리 태생이다. 한학의 대가로서 한시에 능하며 유림의 거성으로 군림하면서도 향민의 존경이 두터웠다. 일제시대 한때 군청 주사로 근무한 바 있다.
    ○ 이기낙(李冀洛)(1900∼1981년) 관향은 전주이며 호는 국사(菊史)이고 손양면 학포리 태생이다. 유시부터 한학을 전공하여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시률(詩律)의 대가로서 만년에는 십일시회(十逸詩會)회장으로서 한시 계승발전에 심혈을 바쳤다. 청년시절 10여 년간 도일…
    ○ 이기재(李夔在)(1868∼1934년) 관향은 전주이며 손양면 수여리 태생으로 호는 황곤(黃崑)이다. 사서삼경과 문장에 능하였으며 서울에 교우가 많았다. 고종 30년 계사 2월 12일(1893년)세자궁 갑술생 경과 장원급제하였으나 적령(適齡)관계로 교지를 받지 못했…
    ○ 이달용(李達用)(1928∽1986년) 관향은 경주이며 경북 울진 태생이다. 6·25한국전쟁을 참전한 육군헌병 상사로 예편하면서 1952년 경찰에 특채되어 28년간 강릉․속초경찰서에서 근무하였다. 현남면 인구리에 정착하여 어업에 종사하면서 양양군수산협동조합 이사를 …
    ○ 이달형(李達炯)(1903∼1981년) 관향은 경주이고 양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찰계에 투신하였다가 퇴직하고 감농하면서 사법서사로 활약했다.
    ○ 이도식(李道植)(조선) 고종 갑술(1874년) 8월에 부임하여 고종 기묘(1879년) 6월 포천군으로 전출하였다. 갑술년 부임하여 궁한 백성을 잘 도와주어 모든 주민을 편안하게 하였다. ‘갑술래선판궁민이안경내’(甲戌來善販窮民以安境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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