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李東植)(1865∼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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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4,957회 작성일 11-02-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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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식(李東植)(1865∼1943년)

관향은 경주이며 자는 치일(致一)이고 호는 취정(翠亭)이다. 관명은 이상학(李相學). 이판사(李判事)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이 유명한 분이다. 인물이 잘나고 풍채가 좋으며 6척 장신에 가히 이르기를 천계일학(千鷄一鶴)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찍이 한말에 법부(法部) 판사(判事)로 순회하였고 고종(高宗) 신축 1901년 재판소 판사에 정3품의 위계까지 올라 명판사의 직책을 다하였다. 지사 김옥균(金玉均)과 친숙한 개화의 인물로서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고관대작은 틀림없이 될 인물이다. 지혜와 모략(謀略) 그리고 담대하고 과단성 있는 인물로서 3개 군(郡)의 가(假) 암행어사 출도를 하다가 맨 나중에 협곡현(歙谷縣)에서 발각되었으나 기지로 미연에 상경하여 죄과를 모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 당시 3개 군현의 출도만 완전히 수행하면 진짜 어사가 된다고 하였다. 글 잘하고 인격과 풍채가 늠름하여 양양사회를 주름잡고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이름을 빛냈음은 물론 가히 양양 100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중앙무대에서 활동하던 한 인물로 꼽아도 손색없다 할 수 있으며 그 후 귀향하여 79세로 일기(一期)를 장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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