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문(李世門)(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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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926회 작성일 11-02-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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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문(李世門)(1400∼?)

관향은 전주이며 완풍대군(完豐大君) 원계(元桂)의 손자이신 보승장군(保勝將軍) 군실(君實)의 아들로 태종 14년 갑오(1414년)사마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고, 세종 5년 계묘(1423년)에 문과 장원급제하여 조정의 춘추관기주관, 의정부검상, 사인을 거쳐 사헌부집의를 역임 중 함길도도진무사로 파견되어 근무하였다. 단종 원년 계유(1453년) 7월 임기를 마치고 사헌부집의로 복귀하였는데 동년 10월 11일 단종 폐위의 계유정란시(癸酉靖亂時) 경성부사(鏡城府使) 이경유(李畊㽥)의 모함(함길도도진무사로 근무하면서 병기유출을 단속 못한 직무유기 죄명)에 의하여 삼척(三陟)에 유배되었다가 4년이 지난 세조 2년 병자(1456년) 봄에 양이[(量移) : 귀향지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것] 양양(襄陽)으로 오니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양양에 뿌리 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후에 가선대부진릉군겸종정경(嘉善大夫晋陵君兼宗正卿)으로 추봉되었다.

국조인물지(國朝人物誌)에 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문학대명조우행의긍식향당”(文學大鳴朝右行誼矜式鄕黨 : 문학으로 크게 명성을 드날린 조정의 고관으로서 올바른 행위를 시골 고향 사람들에게 삼가 본보기로 삼았다.

당시 회자하던 공의 시문 중시시(重試詩) : 오야종명서색분 구중가기정인온 천임봉궐조다사 성공용지배성군 정료광응서령월 어로향야북산운 위안지척도유절 조세승평지재근(五夜鍾鳴曙色分 九重佳氣正氤氳 天臨鳳闕朝多士 星拱龍墀拜聖君 庭燎光凝西嶺月 御爐香惹北山雲 威顔咫尺都兪切 措世昇平只在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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