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범(李錫範)(1859∽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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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022회 작성일 11-02-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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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범(李錫範)(1859∽1932년)

관향은 함평이며 자는 사일(士一)이고 호는 설초(雪樵)이다. 임천리에서 출생하고 도천면 도문리에 이거하였다. 동학란 때에 반동학군(反東學軍)을 조직하여 갑오의병(甲午義兵)으로 활약한 유학인이다. 한학의 대가로서 장년에 군부주사(軍部主事)를 거쳐 고종 때에 중추방의관(中樞防議官)에 임명되어 토비평정(土匪平定)하고 신흥사를 파산에서 복구하였다. 개화문물에 눈을 돌려 대포항을 물물교역의 경제항으로 개발하는 선견지명을 보인다. 망국의 한을 품은 체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도천면장을 잠시 지냈다. 1927년 이상재(李商在) 선생 등과 신간회를 조직하여 강원도지부장으로 활약하고 조직을 확대 반일정신을 고취시켰고 현산학교와 쌍천학교를 항일독립운동의 도화지로 삼았으며 농민조합을 조직하여 무지한 농민을 계몽하여 반일사상을 선무하니 일촉즉발의 처지가 됨에 일제는 공산주의운동이라 지적하고 500여명을 검거하였다. 투옥하니 이것이 유명한 농민조합사건이다. 그리하여 이 고장을 불온사상지역이라하여 요감시(要監視) 감찰하였다.

고종황제의 인산에 공은 친히 참배하고 서울의 만세운동에 직접 가담아고 3월하순경 하향할 때 ‘독립선언문’을 버선 속에 숨겨가지고 와서 도내에서는 가장 치열한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계획 추진 전개한 민족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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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 한 토막>

이공(李公)이 국상에 참석한 것을 안 양양경찰서장은 암암리에 이공을 초대하고 환대하면서 서장 문“양양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면 미연에 방지하여 주겠는가?” 이공 답“나로서는 방지 할 힘이 없다.” 서장“그러면 귀하의 문중에서 일어난다면?” 이공“그것은 내가 방지 할 수 있다.” 서장“그러면 잘 부탁한다.” 그 후 만세운동을 주동한 인물 중에는 이공의 자질(子姪)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분개한 서장은 이공을 초치하여 서장 왈“그 때 귀문중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면 선도방지하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이공 왈“나는 그런 약속을 한 일 없다.” 서장은 다시 통역하던 형사를 불러 대질하니 이공이 노하여 형사를 책하여 말하기를 “너 일본말도 잘 못하는 놈이 내가 언제 방지하겠다고 말하였느냐?”고 크게 꾸짖으니 통역형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퇴장하였다. 통역형사는 그 후 이석범은 과연 영웅이다. 통역한 사람을 서장 앞에서 대갈하니 나는 유규무언이었다. 참으로 영웅이라고 하더라는 일화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