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이영식(李英植)(조선) 순조 신미(1811년) 부임이래 언행이 신중하고 선치함으로 관민이 열복(悅服)하고 원만히 행정을 실시하여 관내가 안태(安泰)하였다.
    ○ 이원선(李元善) 관향은 미상이며 현종 원년 경자(1660년) 무과 만호에 이르렀다.
    ○ 이원종(李源從)(1470∼1541년) 관향은 경주이며 참판 연손(延孫)의 증손이다. 중종조(中宗朝) 생원진사로서 불구명리(不求名利 : 세상에 명리를 구하려 하지 않음)하고 본군 양양읍 내곡리에서 은거하였다.
    ○ 이유화(李由和)(1932∽2007년) 관향은 전주이며 양양읍 서문리 태생이다. 항일 애국정신이 투철한 가정에서 성장한 여사는 사회진출의 첫발을 교육계로 뜻을 두어 초등교단에서 수년간 봉직하였다. 그 후 뜻을 같이한 한용한 선생과 결혼함으로 교단에서 물러나 남편 내…
    ○ 이이중(李頤重)(1723∼1819년) 관향은 전주이며 자는 양중(養仲)이고 호는 행헌(杏軒)이다. 흥덕공(興德公)7세손으로 공은 경학(經學)과 시률(詩律)에 통탈하였으며 체격이 크고 훌륭한 기상과 올바른 행위를 삼가 본보기로 삼고 친족 간 향리 간 정애가 두텁고 …
    ○ 이정우(李鼎雨)(1889∼1965년) 관향은 경주이며 개화에 뜻한 바 있어 신학만을 닦고 산림주사로부터 서면 면서기로 오랫동안 근무하였다. 용천리에 우거하였다.
    ○ 이제설 처 김순례(李濟說 妻 金順禮) 양양읍에 거주하며 관향은 경주다. 22세에 이제설과 결혼하여 금슬이 좋았다. 3년이 되든 봄에 남편이 우연히 병이 들어 한 달간 신음 중 혼수상태에 이르고 죽었다. 김씨는 가족 모르게 후원에 나가 왼손 무명지를 절단하여 그 피…
    ○ 이제원(李濟元) 관향은 경주이며 덕행이 출중하고 근엄한 인물이다. 현산학교를 졸업하고 면서기로 다년 봉사하였고 신구학문에도 능달하였다.
    ○ 이종근(李宗根)(1734∼1815년) 관향은 전주이며 손양면 태생이다. 이광국의 아들로서 그 가통을 계승하여 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또한 지극하였다. 부친 병환 시 목욕재계하고 지성으로 밤낮 기도를 드렸더니 다소의 차도를 보았고 잉어회를 원하므로 겨울에 얼음을 깨고…
    ○ 이종덕(李鍾悳)(1768∼1841년) 관향은 함평이며 호는 이즉(彛則)이다. 순조 21년 신사(1821년)에 청양현감(靑陽縣監)을 지냈고 이조참판이 증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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