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중(李頤重)(1723∼18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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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54회 작성일 11-02-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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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중(李頤重)(1723∼1819년)

관향은 전주이며 자는 양중(養仲)이고 호는 행헌(杏軒)이다. 흥덕공(興德公)7세손으로 공은 경학(經學)과 시률(詩律)에 통탈하였으며 체격이 크고 훌륭한 기상과 올바른 행위를 삼가 본보기로 삼고 친족 간 향리 간 정애가 두텁고 화목하며 가법(家法)은 순박하고 온화하고 몸소 관대히 접객하며 충(忠)으로서 과업을 게을리 않으며 말을 고쳐 하는 바 없으니 영조대왕(英祖大王)때에 행의도신(行義道臣)으로 조정에서 추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다가 90세에 이르러 순조 12년 임신(1812년)에 노직으로 통정대부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를 내리니 그제야 “이 천작을 어찌 감히 사양 하리” 하면서 두건과 옥이 주렁주렁한 관복을 입으셨다. 그 후 맏아들 효자 필용(弼鏞)(사헌부지평)의 상(喪)을 당해 곡성이 울리니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가묘에 알묘하고 나서 이튿날 아침 자식들을 불러 앉히고 나서 “내 장차 죽을 것이다.”하고나서 조용히 고종명하시니 연침에 드신 것 같지 않았다 한다. 영조조(英祖朝) 행검우향천사재학부(行檢于鄕薦事載學府)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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