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양운(朴良雲)(1598∼16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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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운(朴良雲)(1598∼1681년)
관향은 밀양이며, 대과승지(大科承旨)를 지낸 청렴한 주(籌)의 아들로 원명은 수운(守雲)이고 양운(良雲)은 초휘(初諱)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인제현 합강촌에 묘소를 설치하고, 어머니 평창이씨(平昌李氏)를 모시고 양양으로 입향하였다. 광해 9년 정사(1617년)에 진사가 된 박공은 어머니가 백약이 무효인 중병에 신음하니 단지주혈로서 마지막 효성을 다하였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니 조정에서는 효자정려하는 한편 가선대부성균관교관(嘉善大夫成均館敎官)의 벼슬을 내렸다. 공의 사후 효자노직가선대부박량운지비(孝子老職嘉善大夫朴良雲之碑)와 효자각을 양양부 남면 하판교리(襄陽府南面下板橋里) 동구 길가에 세웠었다. 이곳은 손양면 하왕도리로서 7번국도 개설시 도로에 편입되는 관계로 그 자리에서 수십 보 떨어진 길 위쪽 산언덕에 비석만을 옮겨 세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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