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하(李鍾夏)(1881∼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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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06회 작성일 11-02-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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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하(李鍾夏)(1881∼1962년)

관향은 전주이며 자는 성중(聖中)이고 호는 설강(雪崗)이다. 손양면 태생으로 1906년 남궁 억(南宮 檍) 군수가 설립한 현산학교(峴山學校)에 입학하여 1907년 5월 30일 현산학교 보통과 제1학년을 수료하고, 1908년 12월 29일 현산학교 사범과를 졸업(제1회)과 동시 당시 위산면(位山面) 위천서당(渭川書堂 : 지금의 양양읍 사천리) 교사(敎師)로 임명되었다. 이어 위산면 이산서당(二山書堂)에서 교수하였고, 일제 강점 후 1912년 2월 3일 양양군에서 시행한 제1회 서당교사 강습을 수료하였으며 1914년 2월 17일 동면(東面) 한동서당(漢東書堂) 교사로 임명되어 수많은 학동을 교육하였으며, 1919년 기미 3·1운동 때는 공의 제자들이 만세운동의 선두에 나섰었다. 관동(關東)의 거유(巨儒)로서 사서삼경에 통달하고 시문의 문장가였다. 교육에 지엄하여 문하(門下)에 많은 명사(名士)를 배출하고, 명문거족으로 명성을 떨치고, 문묘직원(文廟直員)으로 경인병화(6·25한국전쟁)에 회로(灰爐)한 양양향교의 중건 복원에 공적을 남겼다. 명륜중학교 건립에 심혈을 바쳐 후일 지대한 공적을 찬양하여 1964년 6월 10일 성균관장(成均館長)의 감사장이 증정되었다. 시부(詩賦)에 능하여 많은 문집을 남겼으며 양양향교 교정에 찬(撰)하신 향교중건비문과 교정비문이 각명 수립되어 있어 그 업적을 영원불망(永遠不忘)하는 침비(沈碑)라 하겠다.

 

현산학교 사범과 졸업증서(이종하).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