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용(李弼鏞)(1744∼18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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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732회 작성일 11-02-1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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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용(李弼鏞)(1744∼1812년)

관향은 전주이며 손양면 태생이다. 부모가 득병하면 불침불식하며 신명을 다하여 간호하였고 부친 병환 시에는 분을 맛보고 하늘에 대신하여 죽겠다고 기원하였다. 모친이 병중에 꿩고기(雉肉)를 원함에 이를 구하고자 정성을 다할 때에 꿩이 스스로 집에 날아들어 왔으므로 이를 잡아 대접하였으며 또 두루미고기를 원하거늘 형제가 울며 가로되 “이 설한(雪寒)에 어떻게 구할까”하고 혹한을 무릅쓰고 찾아 헤매다가 집 뒤편에 갔더니 마침 두루미가 나타나므로 잡아서 공양하였더니 차도를 보이더니 돌연 기절하였는데 그 형제가 단지주혈(斷指注血)하였더니 회생하였다. 이런 미행(美行)사실을 조정에서 알게 되자 정려(旌閭)를 명하고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의 벼슬을 주었다. 정려문은 6․25한국전쟁 중(1950년 12월 24일)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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