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장세환(張世煥) 관향은 인동이며 강현면장 수십 년에 치적이 높았고, 독립사상과 배일투쟁에 힘쓰고 3․1운동과 농민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특히 3·1운동에 앞장서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어 수년간 옥고를 치렀다.
    ○ 장시용(張時用) 관향은 인동이며 양양읍 청곡리 태생으로 한학공부와 시문도 잘하였다. 양양향교 재건사업과 양양명륜중학교 설립에 공이 지대하였다.
    ○ 장연시(張縯時) 관향은 인동이며 호를 성산(惺山)이다. 한학가로 시문에 능하고 풍수지학으로 특재를 발휘한 대가였다.
    ○ 장 영(張 泳) 관향은 인동이며 강원도 순찰사(巡察使)로 재직할 때 산자수려한 본도의 경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순찰사직을 사직한 후 만년에는 유유자적할 곳으로 생각하고 양양으로 이거하였다. 고려 공민왕(1351∼1374년)때 여조(麗朝)의 국운이 기우려져 감을…
    ○ 장원식(張元植) 관향은 인동이며 일제치하에 경찰관을 지내다가 양양면장을 역임하고 광복 후 자제교육에 힘썼다.
    ○ 장을생(張乙生) 강현면 둔전리에 1976년 11월 30일에 열녀 인동장씨지비(烈女仁同張氏之碑)가 세워졌다. 장을생은 16세에 간곡리 최식민에게 시집와서 극진히 시부모와 남편을 섬겼다. 21세 때 남편이 중병에 걸려 회생이 불가능하고 죽음의 찰나에 단지주혈로 완전히 …
    ○ 장의수(張誼輸) 관향은 인동이다. 충정공 안세(安世)의 후인으로 엄한 가훈을 이어받아 학문이 첨부(瞻富)하며 향시에 합격하였다. 행도(行道)가 고상하였으며 선인에게는 온 정성을 바쳤다.
    ○ 장익기 처 경주이씨(張翼箕 妻 慶州李氏) 양양읍에 거주하던 경주이씨는 양양사람으로 지아비 병이 위독하여 단지주혈 하였으나 천도무심하여 사망하고 말았다.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코자 하였으나 70노시어머니와 9세 고아가 있으므로 자결치 못하고 가난한 형세에도 늙으신 …
    ○ 장지협 처 제주고씨(張志協 妻 濟州高氏) 고씨의 열녀비는 강현면 방축리 노변에 있다. 인동 장공 지협의 처 열녀 제주고씨는 조선조 영조 때의 사람으로 21세에 사망하였다. 18세에 출가하여 19세에 남편이 사망하였는데 3년간 시묘살이하고 집에 오니 아무도 없어 쓸쓸…
    ○ 장진백(張震白) 관향은 인동이며 강현면 태생이다. 모친 병환 때 단지주혈로 3일간 다시 소생하였으며 별세 후는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조선조 숙종(肅宗) 승하 시에 집 뒤에 단을 쌓고 매일 밤 통곡을 3년간 계속하였다. 유생들이 어사에게 보고하여 크게 상을 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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