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을생(張乙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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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4,224회 작성일 11-02-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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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을생(張乙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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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강현면 둔전리에 1976년 11월 30일에 열녀 인동장씨지비(烈女仁同張氏之碑)가 세워졌다. 장을생은 16세에 간곡리 최식민에게 시집와서 극진히 시부모와 남편을 섬겼다. 21세 때 남편이 중병에 걸려 회생이 불가능하고 죽음의 찰나에 단지주혈로 완전히 회생시켜 3남 1녀를 두고 해로했다. 6·25한국전쟁 때는 마을 이장을 지내고, 피난 때 옷과 양식을 준비하여 시아버지를 피난하게 하였으나 시아버지는 피난지에서 사망하였다. 시아버지의 시신을 모시어 향리 선영하에 안장하여 효도를 다하였다. 또한 인민군에 끌려간 남편이 전시에 3명의 인민군과 같이 간곡리에 온 것을 갖은 수단을 써서 남편을 빼돌렸다. 장씨는 여중호걸(女中豪傑)형의 효열의 부인으로서 1953년에 양양군민정광의 표창과 1975년 3월 1일 강원도지사의 공로패와 상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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