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기(鄭元基)(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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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411회 작성일 11-02-1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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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기(鄭元基)(1802∽?)

관향은 연일이며 자는 여경(汝經)이다. 강현면 석교리에서 생활하였으며 시문에 남달리 재능이 있고 풍류를 즐기었다. 철종 10년 기미 10월(1859년) 설악산 동쪽 동해안 일대에 불의의 대화재가 발생하여 양양부(襄陽府)에 551호. 통천군(通川郡) 472호, 간성군(杆城郡) 486호가 전소하니 수천 명의 이재민이 집을 잃고 거리에서 혹한에 떨고 있을 때 아들 우용(禹鎔)진사와 상의 곡식 천석과 거금 천량을 내놓아 불쌍한 이재민을 구휼하였다. 이에 이재민들은 용기를 내어 농경을 시작했고 은혜를 입은 주민들이 이 사실을 조정에 상소하니 철종께서 ‘많은 재물을 거듭 베풀어 백성을 구휼하고 화재로 인한 나라의 재난을 극복하게 한 공로를 가상히 여겨 가선대부중추부사겸오위장(嘉善大夫中樞府事兼五衛將)의 관직을 특수(特授)하고 철종 11년 경신 12월(1860년)에 가선대부오위장정원기불망비(嘉善大夫五衛將鄭元基不忘碑)라 양각(陽刻) 주조(鑄造)한 철비(鐵碑)를 하사(下賜)하니’ 주민이 자진 동원하여 강현면 석교리에 비각을 건립하고 철비를 설치하여 기려왔다. 세월 따라 비각도 낡아 허물어지니, 1972년 8월 1일 공의 증손 정주화(鄭周和)가 양양읍 조산리 마을 안 아늑한 곳에 비각을 새로 짓고 공의 불망비(철비)를 옮겨 설치하였다. 공의 부인은 정부인안성이씨(貞夫人安城李氏)다. 당시 강원감사(江原監司) 김시연(金始淵)의 상소에 의하여 위유사(慰諭使)로 이천부사(伊川府使) 남종순(南鍾順)을 임명하니 얼른 달려와서 이재민을 어루만져 위로했다. 한다.《철종실록 : 哲宗 11年 閏3月 17日(辛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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