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인벽(趙仁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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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4,298회 작성일 11-02-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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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인벽(趙仁壁)

관향은 한양이며 고려 검교밀직부사 용성군(檢校密直副使 龍城君) 돈(暾)의 아들로서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부친을 따라 동북면(東北面) 병마사(兵馬使) 유인우군(柳仁雨軍)에 속하여 쌍성(雙城)회복의 공이 있었고 또 전공도 크며 조선 태조대왕의 매부이다.

공민왕조 판위(判尉) 의덕부사(懿德副使)를 배하고 삼중대광용원군(三重大匡龍源君)에 이르렀다가 아들 온(溫)과 연(涓)은 조선조(朝鮮朝)창업의 공을 세웠다. 용원부원군(龍源府院君)은 여조훈신(麗朝勳臣)이라 고려의 운수가 다하였으니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여 양주(襄州) 동쪽 10여리에 와서 은퇴하던 중 삼징칠벽[(三徵七辟) : 벼슬을 주려고 자주 조정에서나 지방관아에서 부름]을 하나 가지를 않았다. 그 동리의 이름은 시상[(柴桑) : 지금의 조산]이고 그 동쪽 대포성(大浦城)의 동쪽 기슭에 해월정(海月亭)을 짓고 소일했으며 또 노연탄(魯連灘)과 도취석(陶醉石)이 있어 고상함을 나타냈다. 사후에 시호를 양렬(襄烈)이라 하였다. 그 굳은 의지와 절개는 일조일석에 모든 고을에 전해지고 양양유림에서는 예를 후히 갖추었다. 왕은 이 사실을 듣고 동명서원(東溟書院)을 건립하여 충절을 표창하고 군민은 절의를 추모하여 춘추에 제향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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