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최명수(崔明洙)(1923∽1996년) 관향은 강릉이며 강현면 장산리 태생이다. 대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8․15광복 후 월남하여 대학 졸업하고 교직에 종사하여 1952년 당년 29세에 교장으로 승진되었다. 강릉 왕산국민학교 교정에 송덕비가 세워졌으니 공의 교육애…
    ○ 최병숙(崔炳淑) 서면 서림리에 거주하면서 최여사는 고 김주학(金柱鶴) 교사의 아내로서 일찍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또한 교직자의 아내로서 언행과 자녀교육에 있어 인근주민의 모범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남편 사별 후 5남매를 거느린 그는 행상을 하면서 학비를…
    ○ 최봉년(崔鳳年) 관향은 미상이며 광해 2년 경술(1610년)에 무과급제하였다.
    ○ 최상오(崔相五) 관향은 강릉이며 호는 중삼(仲三)이다. 현감 상은(相殷)의 제로서 숙종 22년 병자(1696년)에 진사 유덕(儒德)으로 명성이 높고 박호(朴灝)의 거안록(居按錄)을 중보하였다.
    ○ 최상은(崔相殷) 관향은 강릉이며 자는 탕향(湯鄕)이고 호는 동애(東崖)이다. 제둔정립(齊遯挺立)의 손으로 영조조에 사마, 숙종 22년 병자(169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은 정랑 해남현감(海南縣監)을 지냈고 문장이 탁월하여 문시에 특수하다.
    ○ 최상익(崔尙翼)(조선) 숙종 8년(1682년)에 양양부사로 부임 이래 대재해가 있을 때 마다 재력을 감축하여 조난자를 구제하고 교풍(敎風)을 진작시켜 향교를 이건했다. 선정이 최우수함으로 조정에서 특별상을 수여했다.
    ○ 최선제(崔善濟)(1922∼2003년) 관향은 강릉이며 현북면 도리 태생이다. 어려서는 신동이라 불릴 만치 명석하였으며 이웃에 있던 봉암서당(鳳巖書堂)에서 다년간 한문학만을 수학하니 모든 경서(經書)를 탐독한 유능한 한학자이자 유학자(儒學者)였다. 양양향교의 장의를…
    ○ 최영만(崔永萬)(1906∼1988년) 관향은 강릉이며 호는 동헌(東軒)으로 양양읍 조산리 태생이다. 양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학원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시문에 능한 한학자로서 서예의 대가이기도 하였다. 양양향교의 전교직을 수행하면서 유림의 선구자적 역할로 도…
    ○ 최영운(崔永運) 관향은 강릉이며 자는 순원(順元)이고 호는 경사(鏡史)이다. 철종 11년 경신(1860년)에 종정원주사(宗正院主事) 무술에 중추원의관이 되고 계묘에 용담군수 옥구군수를 지냈다. 덕행이 높고 시문 경서에 정통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의를 다하였다…
    ○ 최영필(崔英弼) 관향은 강릉이며 자는 성엽(聖燁)이고 호는 절헌(節軒)이다. 창적(昌迪)의 아들로 정조 10년 병오(1786년)에 사마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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