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한기종(韓基鍾)(1926∼1951년) 관향은 청주이며 이명(異名)은 서원수무(西原秀武)로서 현북면 중광정리 태생이다. 현북보통학교를 거쳐 1939년 인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경성 광신중학교에 진학 1942년 3학년에 재학 중 학생의 몸으로 ‘일제에 반대하…
    ○ 한명상(韓命相)(조선) 숙종 신미(1691년)에 부임 이래 명랑한 행정을 하였으므로 백성이 선정비를 세웠다.
    ○ 한하운(韓河雲) 관향은 청주이며 양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현북면 서기로 근무하였다. 항일사상으로 투쟁하다가 수복 후 부면장을 지냈다.
    ○ 함귀녕(咸貴寧) 관향은 강릉이며 호는 동은(東隱) 안평공 전림(安平公 傳霖)의 아들로서 선조조(宣祖朝)에 무과에 등과하고 벼슬이 사과(司果)가 되었다. 임진란 때는 팔위보호관 선략장군(八衛保護官 宣略將軍)으로 양양에서 전투하다가 더 견디지 못하고 이내 물러났다가 …
    ○ 함규영(咸圭榮) 관향은 강릉이며 시와 한학에 능하고 의서도 많이 공부하여 한의사로서 80 고령으로 손양면 하왕도리에서 개업하였다.
    ○ 함기성(咸基成)(1904∽ ) 관향은 강릉이며 1904년 어성전리에서 출생하여 일본 동경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법조인이 되어 가난한 서민들의 편에 서서 수많은 항일애국운동가를 도왔다. 또한 서민들을 위한 변론을 적극화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함경북도 성진상업…
    ○ 함동수(咸東洙) 관향은 강릉으로 정평공 전림의 후손으로 고종 30년 계사(1893년)에 진사가 되었다.
    ○ 함만춘 처 횡성진씨(咸萬春 妻 橫城陳氏) 열녀비가 손양면 가평리에 영조 8년 임자(1732년) 3월에 세워져있다. 횡성진씨가 친가에 다녀오다가 청천벽력으로 남편이 사망하였다는 부음을 듣고 집 앞 연당에 투신 익사하여 합장하였다. 가평리에 열녀 함만춘 처 진씨지비(烈…
    ○ 함상순(咸相舜)(1927∼1991년) 관향은 강릉이며 손양면 와리 태생이다. 손양국민학교 2회 졸업생으로 춘천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양양군청 산업과 농산계장을 역임하면서 농산 행정력을 배양하고 영농의 신기술을 도입시켜 부를 창출하고자 양양군농촌지도소 초대 소장직에 공…
    ○ 함세기(咸世基) 관향은 강릉이며 의사 함홍기 선생의 계씨로 양양보통하교를 중퇴하고 한학과 의서를 연구하여 속초에서 한의원을 개업하였다. 배일감정이 깊어 항상 의관을 정제하고 고풍을 지켰다.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