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인물 목록
    ○ 김문경(金文卿) 관향은 경주이며 손양면 태생이다. 일곱 살 때에 부모를 여이고 양노모를 모시게 되었는데 성장하여 가사를 돌보게 될 무렵 어머니가 병상에 눕게 되자 과거 양육지경이 더욱 간절하여 분을 맛보아 감지하고 월 여간 하늘에 기도를 드렸으며 단지주혈 하였으나…
    ○ 김문달(金文達)(1923∽2008년) 관향은 전주이며 강현면 간곡리 태생이다. 대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4월 일본군에 징병되었다. 조국 광복으로 1946년 귀국하였으며 월남하여 홍천군청에서 서기로 근무하다가 6·25한국전쟁으로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
    ○ 김문배(金文培) 관향은 김해이며 글을 잘하고 강현면장을 역임하였고 배일사상이 투철하였다. 일본 북해도 등지를 방랑하면서 반일로 종신하였다. 야외한정계일성(野外閑情鷄一聲)이라고 윤기병이 읊으니 정중호의어천년(井中好意魚千年)이라고 즉답하는 시문에 능통하였다.
    ○ 김민하(金敏河) 관향은 경주이며 손양면 상운리 태생이다. 다년간 경찰에 종사하였으며 6·25한국전쟁 후 양양군 치안대장으로 질서 회복에 힘썼으며 향리의 전원에서 유유자적하였다.
    ○ 김병경 처 경주이씨(金炳經 妻 慶州李氏) 이씨의 효열녀각은 강현면 사교리[영광정]에 세워져 있다. 경주이씨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모의 종기병에 수충(水蟲)이 최효라 함으로 설중에 우물물을 푸니 수충이 그 속에 있으므로 이것을 복용시켜 차도를 보았다. 또 지아비가 …
    ○ 김병기(金炳基)(1898∽1978년) 관향은 연안이며 서면 내현리 태생이다. 한학을 수학 사서삼경을 송독하고 시문에도 능하였다. 22세에 초학 훈장을 지냈고 유림의 중견으로 활약하고 광복 후 서면장으로 추대되어 과오 없이 난세를 무난히 돌파한 인물로서 항상 덕화를…
    ○ 김병제(金炳濟) 관향은 광산이며 현북면 어성전리에서 대대세거하면서 동리사업에 봉사하였다. 양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학도 뛰어났으며 인리상보(隣里相保)하면서 동리장에 봉사하여 명망이 높았다.
    ○ 김복래(金福來)(1916∽1983년) 관향은 강릉이며 강현면 침교리에서 태어나 양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강릉재판소에서 오랫동안 근무 집달리로서 대인을 부드럽게 하였으므로 평이 좋았다. 수복 후 양양에서 사법사서로 종사하였다.
    ○ 김복수(金福壽) 관향은 김해이며 세준(世準)의 아들로 어모장군용양위부호군(禦侮將軍龍驤衛副護軍)의 관헌이 되었다. 1545년 인종을사사화에 아비의 삭훈(削勳)에 한을 씻고 옛 공적을 회복코자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때는 명종 13년 무오(1558년)이다…
    ○ 김봉수(金鳳洙) 관향은 김해이며 강원도사범학교 졸업하고 15년간 교편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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