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광두(高光斗)(1884∽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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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10,323회 작성일 11-02-1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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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두(高光斗)(1884∽1963년)

관향은 제주이며 자는 군칠(君七)이고 호는 일오(一悟)이다. 조실부모하고 효제지도(孝悌之道)와 겸양지덕으로 교회(敎悔)하고 가훈이 지엄한 가문에서 조모 장씨(張氏)의 애무를 받아 성장하면서 사서삼경을 독파하였다. 1908년에 일본헌병 포수의 불경멸지액(不敬蔑之厄)으로 가문에서 참화를 당하니 가히 왜구(倭仇)의 잔학상을 현장에서 목격케 하였다. 사건의 발단은 장씨의 자부가 베틀(織造機)에 앉아서 베를 짜는데 일병 포수가 다가와서 부인을 보고 별빈(別嬪)이라고 농담하는 것을 자제들이 듣고 크게 질책하니 포수가 붙잡고 무인지경에 가서 무조건 총살하였다. 세 자제가 뒤쫓아가 대성책망하니 3인 모두 총살당했다. 불구대천의 원수 일본 놈의 잔학상이 천하에서 광란하지 않았던가. 그 후 10년이 지난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니 고씨일문 일체봉기하고 공은 선두에서 나아가니 체포되어 끌려갔다. 다행히 참사 이종한(李鍾漢)의 주선으로 옥고는 면하였으나 고씨일문과 전동민은 모진 태형을 받았다. 지엄한 공이 운명할 때 자제들을 불러 놓고 ‘항상 우애하고 효제하는 귀감이 되라’ 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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