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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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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의 인물

    양양의 역사 인물을 소개합니다.

    ○ 걸승(乞升)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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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승(乞升)

    고려 고종(高宗) 때 낙산사의 사노[(寺奴) : 절의 종]였다.

    1253년(계축) 1254년(갑인) 몽고군이 쳐들어 올 때 낙산사의 이성(二聖)의 진용(眞容)과 두 보주를 양주성(襄州城)에 옮겼는데 양주성이 함락될 때 낙산사의 주지 선사 아행(阿行)이 두 보주를 은합(銀盒)에 담아가지고 도망하려하니 이를 탈취하여 깊이 땅속에 묻었다.

    1254년 10월 22일 양주성이 함락될 때 아행은 죽고, 죽음을 면한 걸승은 병화가 물러간 뒤 두 보주를 파내어 명주도(溟州道) 감창사(監倉使) 낭중 이록수(郎中 李祿綏)에게 바쳤다.

    1258년(무오) 10월에 지림사(祗林寺) 주지 대선사 각유(覺猷)가 “낙산사의 두 보주는 국가의 신보(神寶)인바 지금 명주성도 위태하니 어부[(御府) : 임금의 물건을 넣어두는 곳집]로 옮겨 안치함이 마땅하다.” 아뢰니 고종(高宗 : 고려 23대왕)께서 윤허[(允許) : 임금의 허가]하시어 야별초[(夜別抄) : 고려 고종 때 최우(崔瑀)가 조직한 특수한 밤 순라군] 10인을 보내어 걸승을 거느리고 명주성에서 가져다 내부[(內府) : 나라 안 곳집]에 봉안하였으며 보상으로 은 1근과 쌀 5석을 받았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곧 낙산사의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지켜낸 인물이라 하겠다.[삼국유사에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