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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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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의 인물

    양양의 역사 인물을 소개합니다.

    ○ 이공량(李公樑)(1519∼선조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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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공량(李公樑)(1519∼선조년간)

    관향은 전주이며 자는 국간(國幹)이다. 손양면 수여리에서 태어난 전주이씨 중흥조(中興祖)로 명종 13년 무오(1558년)에 중정시(中庭試)에 급제하고 시문에 능하여 경학에 통효[(通曉) : 깨달아서 환히 앎]한 유학자로서 통훈대부를 지내고 흥덕(興德)현감이 되었다. 택호(宅號)를 흥덕댁이라 하고 집터가 양양에서 제일의 명당이라 한다. 특기할 것은 공량(公樑)이후 14대 손까지 그 재산이 현재까지 계승함으로서 장재댁(長財宅)이라고도 호칭한다. 이것은 가도(家道)의 규모와 질서가 바르고 근검절약하였으며 자손들이 공의 유훈을 엄수하여 14대 420여 년 간 시종여일한 가풍이었다. 또 생활방식이 질서 있어 14대 동안 화로의 불씨를 끄지 않았다고 한다. 놀라운 생활규모이며 자자손손 공의 수신제가의 유훈을 엄수한 모범가통(模範家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