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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정 큰 손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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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조회 11,806회 작성일 11-04-0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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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정 큰 손녀 딸

 

 2004년 6월 중순 나는 큰 손녀 딸과 세상에서 처음 눈이 마주쳤다.모태에서 태어 나자 마자 한차례 고고히 함성을 냅다 지르더니만 이어서 목욕을 한 뒤 아주 이쁘고 포근한 포대기에 곱게 싸여 정성을 다하는 간호원에게 안겨 호기심 가지고 긴장하며 기다리던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인계된 병원 대기실에서 였다.

 

나는 "큰 손녀딸이 눈은 앞쪽 만 뚜렷하게 응시하는 것을 보고 마치 "여기가 어딘가?....도대체 무엇하는 덴가...." " 당신은 누구요....? 하는 맨처음 여행 장소를 호기심 가지고 찾지않나 하는 느낌을 가졌다. 할아버지인 나와 손녀 딸의 첫번 째 시선 마주침은 바로 그런 첫정의 교감이었다.

 

산모인 큰 며느리 우리 새아기가 잉태하여 10달 동안에 보호했던 첫번째 제 자식이 때어 났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또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을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시아버지에게 불쑥 한다는 말이 "아버님! 아버님! 애기가 똥싸는 것 보셔요!" 배냇똥이 빼지지 나오는 것을 신기한 듯 보면서 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한바탕 웃으면서 행복해 했다.

하품을 하지 않나, 기지개를 기운차고 시원하게 켜지 않나, 딸꾹질을 하지 않나, 왠 재채기 소리는 그렇게 크고 기운찬지.

 

귀여운 손녀딸은 성남 분당 금곡동에서 나서 4일만에 애비 직장이 있는 의정부 경기 북부 도청 앞 그들이 장만한 새집께 근처에 있는 조리원으로 이동을 하였다. 나는 아내와 함께 손녀딸 면회가는 재미에 다른일들은 어떻게 됐는지 지금도 도통 기억이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가정에게 주신 새생명의 선물은 그렇게 신기하고도 감사로웠다.

 

새로운 호칭이 우리 가정에 매겨지는 역할을 나의 귀여운 손녀가 주도했다. 나는 아버지에서 할아버지가 되고 내 아내는 애비 엄마에서 할머니가 되고 고모가 고모할머니 아주 젊은 마흔도 안된 외가댁 작은 외삼촌 내외가 난데없이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한동안 호칭 문제로 손가락을 꼽기도 했다.

 

큰 손녀딸이 제일 처음 뚜렸하게 의시표시를 한것은 "엄마"란 외침이었다. 제 애비는 언제쯤 이제나 저제나 "아빠"라고 불러 주나 불만스레 기다렸지만 나의 큰 손녀딸 입에서는 단호한 소신으로 "엄마" 가 맨 먼저였고 한동안 그러했다. 누구도 권하거나 말릴 수 없는 자신있는 부름이었다. 누가 감히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막을 수 있으랴! 세상에서 엄마의 품안이 얼마니 포근하고 행복한가를 또한 그가 장차에 알겠지만 인류 모성의 위대함은 나의 손녀딸에게서 모두들 다시 증명되는 순간 순간이었다.

 

누워서 하는 일이란 쌕쌕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옹알거리며 소리지르고 팔 다리를 허공에 올려 뻗치며 제맘대로 내두르는 동작이었다. 두 발바닥을 열이나게 비벼가며. 뒤집기 전에 하루 종일 밤낮으로 그러했다. 처음 뒤집기 할때의 눈은 똑바로 뜨고 그 열심한 입을 야무치게 다물은 동작하며....! "뒤집는다" "뒤집는다" "옳치! 옳치!" 가족 모두가 올림픽 경기 출전 우리 선수 응원하드시 손뼉을 치며 응원하고. 손녀딸은 그렇게 성장했다. 100일이 될 때 나는 그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했다. 기억 남을 소중한 선물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선물이 생각나지 않았다. 여러 날을 생각한 끝에 마침내 뚜렷한 선물이 한가지 생각이 났다. 그가 잉태되고 세상에 태어난 신기한 사실들을 노래로 선물 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 선물은 바로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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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직후 >

 

 

윤서(允瑞)의 세상 보기/화곡     

 

                                                                                                                               

                                              이것은 우주 생성에 비견할 이야기 
                                              하나의 생명이 태동하는 신비의 찰나

                                              뿌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랑과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그 누구도 범하지 못하는
                                              강한 모성과 부성이 굳게 지키며
                                              열번이나 손꼽는 보름달이 환히도 비췄다

                                              비로소 하늘에 울려 퍼지는
                                              태초 음성의 고고함이여
                                              너 드디어 여기에 있고
                                              처음으로 내다보는 고요한 눈빛 속엔
                                              '도대체 이곳이 어떤 곳인가...?'

                                              아름다운 세계
                                              부모님이 사시는 세상에 또 한자리 하며
                                              가족들의 호칭이 새롭게 정해지고
                                              웃음의 보따리가 좌악 펼쳐진다.

                                              기쁨과 서광이 가득한 횃불이 되고
                                              샘솟는 지혜로 세상을 수 놓으며
                                              맑고 환한 미소로 이웃과 어깨동무 하는
                                              그 영광 그 축복 안에서 네 삶을 펼쳐라. 

                                                                                       

 

                                              2004년 9월26일 윤서의 백일 되는 날에... 

                                                                                                                                    -       할아버지가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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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일 사진 >

 

 

나는 큰 손녀 딸에게 이 시를 선물하였다. 손녀딸은 노할머니(증조할머니)가 재작년에 88세로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로 가실때 까지 온갖 귀여움도 많이도 받았다. 기력이 쇠하신 어머님께서 증손녀딸과 눈을 마추며 어르면 윤서는 해 맑게 웃는데 이 웃음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평화의 웃음이었다.그가 어른께 효도하는 모습이 곧 웃음인 것이고 잘자라는 몸짓이었던 것이다.

말 못하여 모르는것 같지만 눈치가 빨라 어른들의 위계 질서를 주어진 생활속에서 벌써 다 간파하고 있었다.춘천 롯데 아파트로 이사온 뒤의 일이다. 그가 네살때의 어느 날 윤서가 본격적으로 말을 배울 때인데 한번은 할아버지 앞에서 짜증을 내며 신경질을 내었다. 그 신경질 내는 모습이 자주 계속 될가 염려되어 그에게 그러지 말라고 평소와 다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불만스레 아무 대꾸도 못하고 묵묵히 있던 큰 손녀 딸이 마침 안방에서 나오시는 노할머니를 보더니만 노할머니를 향하여 큰소리로 일러 바쳤다." 노할머니 노할머니 할아버지가 나한테 까불어!" 이 소리에 한동안 우리 가족은 발을 구르며 배꼽을 잡았다. 할아버지가 노할머니한테 가정의 위계 질서 가운데 꼼짝 못하는 것을 어린 그였지만 이미 똑똑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까불지마~!"....?

같은 해 늦가을이었다.내가 서재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린 윤서가 내 옆에 오더니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나의 입술에다가 무엇을 집어 넣었다. 무의식 적으로 계속 컴퓨터 자판을 들여다 보는데 입에 들어온 것을 오물거리던 내 혀끝이 조금 이상하였다. 찝찔 한 것이.... 평소보다 다른 느낌이 들어 내가 큰 손녀 딸을 내려다 보며 물었다. "이게 뭐야!?" 손녀딸이 재미있다는 드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대답하였다. "콧딱지!" 나는 손녀딸의 콧딱지를 맛본 것이다. 갑자기 놀라는 시늉에 손녀딸은 더욱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나를 쳐다 보았다. 아이들을 키우다가 가끔보면 애기들이 제 콧딱지를 잘도 먹더니 이젠 할아버지에게 잘도 먹이네....! 이 일화를 지금도 온 가족 앞에서 말하면 모두들 재미 있게 웃는다.   

 

올해 큰 손녀딸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큰아들 소생 손녀딸 둘 작은 아들 쌍둥이 손녀딸  이렇게 넷을 5년 동안 한집에서 키웠다. 이동안 나는 인생의 의미를 다시 배웠다고 말 할 수 있다. 작년 2월 말에 자식들이 손녀딸을 모두 데리고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공간적으로 멀어진 것이다.

 

그러나 갓나서 5년간 그들 넷을 나란히 눞혀 놓고 키웠으니 그들과 얽힌 잔정이 어떠 했으랴. 부모 품에 간 그들이어서 이젠 "해방이다" 라고 했는데 어린이 집과 유치원에  보낼 때는 종일 반이었지만 초등학교는 반나절이면 귀가 하게 하는 사태가 또 벌어

졌다.그들과 가까이 할 일이 또 터진 것이다. 한낮에 그를 데려올 수 있는 임무의 몫이 시간이 남아도는 할아버지인 나에게 마땅히 주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요즈음은 손녀 딸 데리러 가고 함께 지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다.

 

귀가시 그가 가자는 대로 문방구도 가고 슈퍼도 가고 시소타러 가자고 할 때 나는 거절을 하지 않는다. 잘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뒤에서 붙잡고 밀어 달라고 할땐 힘에 부친다. 그러나 손녀는 나에게 말한다."할아버지! 착한 일하면 하늘 나라엘 가? 내가 대답한다. "그럼! 하늘 나라에 가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착하지 마아~!"

"....?"

그가 생각하는 범주의 하늘나라는 갑자기 다가오는 이별을 두려워 함이었다. 큰손녀 딸은 정이 담북 들었던 노할머니와의 이별에서 여섯살 어린 나이에 내고향 양양 설악산 산소 선영에가서도 제일 많이 흐느껴 울어 참고 있던 모든 어른들까지 울음 바다가 되게한 주인공인데 그 노할머니와의 슬픈 이별을 아직도 생각하는가 보다.

 

요즈음 비위를 잘맞추어 주

니 더욱 재잘 거리며 행복해 하는 그가 말동무 할아버지를 일러 바칠 절대적인 "빽"(?), 후원자 노할머니도 하늘 나라에 갔으니 이젠 나를 "까불지 않는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2011. 3. 27. 화곡 김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