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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의 어제와 오늘
襄陽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태백산맥의 중동부에 자리하여 江原道 영동의 설악산을 진산으로 동해를
연접하고 있어 山海佳景을 집약하여 茫茫大海를 바라보는 地名 그대로 “해돋이 고장”이다.
영동지방에서는 가장 큰 젖줄인 양양 南大川이 넓은 삼각주 평야를 이루고 기후 또한 온화하여 이유역과 해안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많이 밀집된 선사문화의 보고이며 신석기 문화의 最古(BC6000)의 요람이다.
양양은 고예국지(古濊國地)로 고구려때에는 翼峴縣 또는 伊文縣이라 칭하고 신라시대에는 翼嶺이라 칭하다가 1221년(고종8)부터 양주방어사로 승격되면서 襄州로 이름하다가 1416년(태종 16) 비로소 襄陽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95년 지방제도의 개정으로 비로소 양양군으로 되었고 1919년 고성군 토성면과 죽왕면이 양양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8·15광복은 민족해방의 기쁨도 채 느낄틈도 없이 3·8선분단으로 이어져 분단1번지의 현장으로서 설상가상
으로 행정관할구역에 대한 수차의 편입환원이란 분단의 비애를 곱씹는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동년
현남면전역과 현북면, 서면 등의 남쪽일부가 강릉군에 속하고 나머지 손양, 양양, 속초. 토성. 죽왕면과 현북, 서면 대부분이 以北관할에 들어갔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南北전쟁의 각축장이 되어 많은 인명피해는 물론 군전역이
폐허의 재마당을 방불케하는 참상을 빚었으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천만다행이 천년동안 지속
되어 오면서 전통문화공동체의 역사적 뿌리가 깊게 박혔던 본래의 양양군 행정구역이 복원 수복되었다. 이로써
양양은 “분단1번지”라는 외세에 의한 비극의 현장에서 “통일1번지”라는 정전협정시 전세의 상승작용에 의한 지역적 통일 전세의 휴전선 획정에 의한 지역적인 통일로 인해 축복받은 천혜의 고장이다. 1963년 속초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고 토성면과 죽왕면은 고성군에 그리고 현남면이 양양군에 각각 환원 귀속되었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1읍 5면 124리이다.

또한 지리적으로 태백산맥에서 뻗어내린 심산유곡과 임해산간에는 삼국통일 직후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불교
문화가 高僧大德에 의해 크게 번성함은 물론 조계종의 본원인 선종의 근본 도량인 陣田寺가 자리하였었다.
자연환경은 동쪽으로 동해안을 따라 좁고 긴 평야가 전개되고 서쪽에는 만학천봉이 줄을 이어 南北으로 가로막고
있어 산과 계곡이 많다. 산으로는 서남부에 매복산(1,360m), 약수산(1,306m), 정족산(869m) 서부에 점봉산(1,424m), 북쪽에 설악산(1,708m)등이 있어 강릉시, 인제군, 홍천군, 속초시와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이들 산간계곡에서
和尙川, 南大川, 五色川, 西林川, 沕淄川 등이 발원하여 흐른다. 따라서 농경지는 계곡의 하천을 따라 좁게 형성
되거나 해안지대에 한정되어 있다.
기후는 서쪽의 태백산맥이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동해의 해양성을 띤 영향으로 연평균 기온이 약 11˚C - 13˚C, 1월 0.1˚C - 3.5˚C, 8월 24.1˚C - 25˚C, 겨울에는 서해안 보다 3˚C영서보다 5˚C나 높고, 강우량은 1,100mm - 1,200mm이며 특히 영동지방은 5·6월에 東北쪽에서 불어오는 이른바 녹한동(높새)이 있다. 그리고 태백산맥에
의한 휀(Fouhn) 현상으로 인하여 남서풍이 강하여 이른바 “襄江之風”이란 말까지 생겼으며 계절적으로 보면
봄이 짧고 가을이 길다.
주요산업은 농업, 수산업, 임업, 관광산업 등이다. 경지면적은 1999년 현재 4.321ha로 경지율이 93.4%에 불과하며 그중 논이 2.765ha로 64%를 차지하고 밭은 1,547ha로 36.0%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감자,
옥수수 등이다.
수산업은 350여척의 어선이 있으나 대부분 5t 미만으로 영세한 형편이며 주로 명태, 오징어, 멸치, 고등어 등을 어획하고 있으며 계절적으로 남대천으로 소상하는 연어, 황어, 은어 등이 유명하다.
임산면적은 534.98ha로 전체면적의 85.11%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송림으로 일본까지 알려져있는 송이버섯을 비롯한 각종 버섯과 취나물, 고사리 등 각종 산채가 난다.
관광산업은 연간 약 1,000만명의 관광객이 해수욕장과 설악산을 비롯하여 인근 명승고적을 찾아오므로 활발하다.
상업활동은 양양읍의 상설시장을 비롯하여 현남면 인구리와 강현면 물치리에 정기 5일장이 열리고 있으며 서면
오색리와 강현면 전진리에도 관광객을 위한 상설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양양을 槪括的으로 본다면 근·현대에 이르러 대내외적으로 시대적 변화와 지정학적 변천이 무상하여 한때 불행하게도 남북분단의 현장으로 인하여 엘리트 집단도 南北으로 헤어지고 경제 환경의 악화 등으로 지역발전의 지체현상을 면치 못하였으나 천혜의 자연과 풍토적 특성으로 인하여 주민생활은 대체적으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살기좋은 고장”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변방의 숱한 외침으로부터 끈질기게 지켜온 향토 수어의 고귀한 정신이 켜켜이 쌓인 터전위에
부식한 민족의식과 지리적으로 험준한 자연을 극복하면서 채질화된 근면 성실성과 협동단결력 그리고 不義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正義感이 어느 고장보다도 강한 특성이 있다.

 
양양군 연표
시대
연대
중요사항
고대
구석기시대
(BC20만-50만년)
BC6000
손양면 도화리 해안구릉지 능선지대
오산리유적(취락)
신석기시대
조산리,가평리,송전리,남양리,하광정리,지경리 유적등
청동기시대
포월리(지석묘)사천리,조산리,기정리(지석묘),금강리(지석묘),
학포리 상양혈리,범부리(지석묘), 유적 등
초기철기시대
조산리,가평리,송전리,여운포리,지경리 유적 등
고조선
古濊國地로 漢武帝時에는 樂浪郡 呑列縣으로 있었으며 昭帝時에는 東部도위로 있다가 폐지되고 자립함.
삼국
313
668
671
689
804
821
漢末에 고구려에 속하여 何慧羅州의 翼峴縣 또는 伊文縣이라고 칭하였다.
신라통일후 翼嶺縣으로 칭하다가 守城郡의 領縣이 됨
의상대사 낙산사 창건
원효대사가 영혈사 창건
선림원 범종 조성
도의선사가 설산 입산 진전사 주석
고려
995
1007
1008
1018
1221
1257
1260
1329
1370
10道를 정할 때 朔方道에 속함.
翼嶺縣에 축성(양주성)
명주사 창건
溟洲의 洞山縣을 來屬시켜 縣令을 둠.
거란병의 침공을 물리친 공으로 襄州防御使로 승격
몽고병에 강참한 사건으로 德寧監務로 강등
知襄州事로 회복
강릉도 存撫使安軸의 명으로 구교리에 향교창건
동해신묘를 창건함
조선
1397
1413
1416
1466

1490

1545
1618
1623
1628
1628
1637
1666
1682
1683

태조의 외가 고을이라 하여 府로 승격
例에 따라 도호부가 됨
비로소 襄陽도호부가 됨
세조대왕이 왕비 왕세자와 같이 行幸할때 낙산사를 크게 중수하고 홍예문 축성 및 담장 축조
강릉존무사 안축의 명에의한 양양수령과 통천수령이 공조하여 구교리 미륵골에 향교를 지음
대포영이 방어위치가 못된다하여 혁파함
戊午사화로 인하여 縣으로 삭강
府로 회복
역란으로 縣으로 삭강
東溟서원창건(조인벽 배향)
府로 회복
강릉의 강상대역사로 襄陽의 襄字를 따서 江原道를 原襄道라 칭함
구교리에 소재한 향교를 현소재지인 文宣王洞(임천리)으로 이전
원주의 강상죄로 인하여 襄陽의 襄字를 따서 江原道 江襄道로 개칭
근대
1895
1906
1919(4)
1919(5)
1927(4)
1932(6)

1937
1939

지방제도의 개정으로 襄陽郡이 됨
南宮億부사 현산학교 창설
기미만세운동 발발(연인원 6천명 6일간 계속됨)
간성군이 폐지되고 토성면 죽왕면 本郡에 편입
신간회 양양지회 및 양양농민 조합 결성
양양농민 조합의 항일운동 전모가 탄로되어 700명이 검거되고 86명이 체형을 받았다.
東海 北部線 鐵道개설(양양역설치)
襄陽鑛山을 鐘紡會社 채굴공사 착수
현대
1945

1950

1951(4)
1953(7.27)
1954(11.17)

1963(1.1)

1963(10.26)
1971(12.30)
1972(1.6)
1973(1.1)

8.15광복과 더불어 3.8선으로 南北이 단절되어 현남면전역을 비롯하여 현북면과 서면 南部일부가 강릉군에 속하고 나머지 양양, 강현, 손양, 속초, 토성 죽왕면과 현북, 서면 대부분이 북조선치하에 들어갔다.
6.25전란이 발발하여 3.8선이 도화선이 되어 인명·재산등 전화가 전국에서 제일 컸다.
군자치위원회를 구성했다가 동년 7월 4일부터 軍政을 실시
휴전 협정이 조인된후 본군 전역이 수복됨
수복지구 임시조치법에 따라 현남면은 명주군에 편입되고 현북면과 서면 일부는 다시 환원됨.
행정구역개편으로 속초읍이 시로 승격분리되고 죽왕면 토성면이 고성군에 편입되는 반면 명주군 현남면이 본군에 환원됨
양양읍에 소재한 양양경찰서가 철폐되고 속초로 이전
양양읍 소재 양양농산물 검사소를 철폐되고 속초로 이전
양양읍 소재 양양농산물 검사소를 철폐하고 속초로 이전
양양군 관할에 있던 권금성, 비룡폭포, 피골등지가 속초시로 편입된
양양읍 소재 양양교육청을 철폐하고 속초로 이전